음, 그러니까 말이죠…

한국에서 이해관계 조정을 해내는 조직은 대법원과 헌재재판소 밖에 없나, 하는 아득함을 자주 느낀다. 아니면 해외 사례 정도가 유일한 조정 기준 일까나. 행정부는 해외 사례가 나올 때까지 좌충우돌하고, 입법부는 이리저리 긁어모아 법률을 만들어 보지만 어느 쪽이든 나오는 순간 손해보는 이익 집단이 헌법 소원을 집어넣는 이상에야… 오늘 대화의 결론은, “헌재 재판관 선출을 직선제로나 해볼까요?”였음. -_-;;

– 아니 정말 농담이 아니라 내각제 국가였다면 내각에서 이뤄져야 할 파워 게임이 헌재에서 이뤄지는 국가라면, 그 파이널 배틀의 배틀러!;;를 국민이 직접 뽑을 기회 정도는 줘야 하는 거 아닌가, 3배수 정도를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추천하고 렛츠 배틀! 이라는 감각으로.;;;

– 트위터에서 은둔을 선택했더니 블로그가 트위터화 되어가는구만. -_-;;;

– 개인적으로는 국회에서 전원 추천 후 호선 하는 쪽을 선호하긴 합니다. 다만 임기를 1/3씩 엇갈리게 해서 1/3씩 선출하는 것으로.

이번 헌법재판소 낙태죄 합헌 결정에 대한 간단한 해설문.

링크: 헌법재판소의 결정 요약문(2010헌바420)

주의: 이번 글은 쉽게 쓰기 위해서 법적 형식논리는 상당부분 일부러 빼 놓고 썼습니다. 위 링크의 원문이 훌륭하게 요약되어져 있으므로 그 부분은 원글을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 끝에는 네줄요약을 해 놨으므로 시간이 없으신 분이라면 그 쪽부터 읽으면 되겠습니다.

이번 헌법소원소송에서 다룬 조항은 두 개입니다. 일단 사건에서 문제된 조산사의 낙태를 무조건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 제1항입니다. 그런데 이 조항은 형법상 자기낙태죄(제269조 제1항)이 위헌으로 무효라면 당연히 무효가 되므로, 자기낙태죄도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서 위헌 여부를 다루었습니다. 즉 임부 자신이 낙태하는 게 범죄가 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걸 도와준 이도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요. 이들 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형법(1995. 12. 29. 법률 제5057호로 개정된 것)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①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형법(1995. 12. 29. 법률 제5057호로 개정된 것) 제269조(낙태) ①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번 결정(판례)에서 가장 첨예하게 맞선 부분이 바로 이 자기낙태죄, 임부가 스스로 낙태하는 행위를 범죄로 볼 것이냐 말 것이냐는 부분입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이 문제는 두 개의 권리가 충돌합니다. 이번 결정에서도 마찬가지로 태아의 생명권과 임부의 자기결정권입니다. 풀어 말하면 임부 자신이 낳기 싫겠다고 하여 태아를 죽이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아닌가 입니다. 일단 사람 하나가 자기가 싫다고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절대 허용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태아를 어디까지 보호받을 인간으로 볼 것인가? 라는 문제가 됩니다. 일단 두 입장이 대립합니다.

(합헌의견) 태아가 비록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모(母)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모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되어야 한다. 헌법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으로 될 예정인 생명체라는 이유 때문이지, 그것이 독립하여 생존할 능력이 있다거나 사고능력, 자아인식 등 정신적 능력이 있는 생명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러므로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그에 대한 낙태 허용의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인용자 주: 하지만 수정란이 경우에는 착상여부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생명권, 즉 인간여부를 부정합니다.)

요약: 잘만 크면 사람이 될 건데, 그런 아이인 생명체를 죽이자고?

(위헌의견) 현대 의학의 수준에서는 태아가 임신 24주에 이르기까지는 자존적 생존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고 있으므로, 태아의 독자적 생존능력이 인정되는 임신 24주 이후에는 태아의 생명도 인간의 생명과 어느 정도 동일시할 수 있으므로 임부의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임부의 생명이나 건강에 현저한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등 특단의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함이 바람직하다. (중략) 의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임신 초기(임신 1주-12주)의 태아는 사고나 자아인식, 정신적 능력과 같은 의식적 경험에 필요한 신경생리학적 구조나 기능들은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바, 임신 초기의 태아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반면 (후략)

요약: 엄마의 일부로만 붙어있는 의식, 정신능력도 없는 세포덩어리를 사람으로 볼 순 없지.

합헌의견은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한 순간부터 생명권의 보호대상, 즉 인간으로 취급하자는 데 반해 위헌의견은 독자적 생존능력을 기준으로 임신 24주 이상이 되어야 인간으로 보자는 의견입니다. 다만 위헌의견은 임신 12주 이상부터는 태아가 고통을 느낄 수 있고 낙태로 임부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으니 임신 12주 이내에만 낙태를 기본적으로 허용하자는 입장입니다. 즉 헌재의 어느 의견을 따르더라도 임신 중기(임신12주~23주) 이후부터는 낙태가 원칙적으로 금지됩니다. 헌재의 의견대립은 임신 초기(~임신12주)의 낙태를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입니다. 낙태의 전면적 자유화는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대립점은 자기낙태죄가 낙태를 막는데 효과적인가 하는 점입니다. 현재 모자보건법은 몇몇 이유(임부의 건강에 치명적 영향, 근친상간, 강간등)가 있을 경우 임신 24주 이내에 한하여 의사가 낙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유에 대한 판단을 의사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해서 실상은 산부인과의 가장 큰 일거리가 낙태시술이 된 것이 현실입니다. 의사도 돈 벌어야 하는데 자기 혼자만 하면 되는 싸인 안 하기가 쉽지 않겠죠. 위헌의견은 자기낙태죄가 사실상 효력이 사라졌으니 돌팔이 낙태꾼들에 의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태아가 사람도 아니고 임부의 건강과 생명에도 영향이 적은 임신 초기(~임신 12주) 이내의 의사가 안전하게 시술하는 낙태를 허용하는 편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임부의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논리를 폅니다.

(위헌의견) 형법상 낙태죄 규정이 현재는 거의 사문화되어 낙태의 근절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중략) 임신 초기의 낙태는 시술방법이 간단하여 낙태로 인한 합병증 및 모성사망률이 현저히 낮아지므로, 임신 초기에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낙태를 허용해 줄 여지가 크다. 불법낙태로 임부의 건강이나 생명에 위험이 초래되는 사태가 빈발하고 있어 그 대책이 시급한 현실에 비추어 보면, 적어도 임신 초기에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낙태를 허용해 줄 필요성이 있다.

요약: 어차피 처벌해도 이리저리 다들 야매로까지 한다니깐? 그럴 바에는 안전한 한도에서 하고 싶다는 대로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지.

이에 대해서 합헌 의견은 낙태를 처벌하는 것 외에 피임 등 성교육이나 보육 지원만으로는 낙태를 줄이는데 충분하지 않고, 임신 초기의 낙태를 자유롭게 허용할 경우 사회적 경제적 이유, 즉 부끄럽거나 키우기 힘들다는 이유로 낙태가 더욱 만연할 것을 우려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아직까지 자기낙태죄가 효력이 있다는 입장입니다.

(합헌의견) 성교육과 피임법의 보편적 상용, 임부에 대한 지원 등은 원하지 않는 임신을 미연에 방지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불법적인 낙태를 방지할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중략)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태아의 생명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것에서 더 나아가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로까지 그 허용의 사유를 넓힌다면, 자칫 자기낙태죄 조항은 거의 사문화되고 낙태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인간생명에 대한 경시풍조가 확산될 우려마저 없지 않다.

요약: 그래도 다른 방법들이 안 통하잖아. 그리고 결국 돈 없거나 부끄럽다고 사람 죽이는 걸 방치하자는 거냐? 하고 싶다고 해도 그렇게는 못해주겠다.

위헌의견은 자기낙태죄 전체가 위헌이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기 힘들고 임부 건강과 생명에는 별 지장이 없는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금지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입장입니다. 합헌의견은 어차피 지금 법률들로도 의학적, 윤리적으로 불가피한 낙태는 할 수 있는데 그 이상으로 낙태를 허용하면 결국은 부끄럽고 키우기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태아를 낙태하자는 것이니 거기까지는 허용할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결국 태아를 사람처럼 생명을 보호할 것인가,와 부끄럽거나 키우기 힘들다고 하는 낙태를 인정할 것인가가 대립점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헌재의 이번 결정은 가부장적인 문제와는 거리가 멉니다. 헌재는 임부가 기혼인지 미혼인지, 미성년자인지 성년인지는 전혀 다루지 않았습니다. 가부장적 권리에 대한 논의 또한 없었지요. 태아를 사람과 비슷하게 생명권을 보호받아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 곧 가부장적이라 보기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또한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인한 낙태 또한 반대할 근거가 있는 것이, 현행 형법은 갓 태어난 영아를 치욕을 은폐하거나 양육하기 힘들다고 하여 즉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살해하는 부모등을 명시적으로 처벌하고 있습니다. (형법 제251조, 영아살해죄) 결국 갓 낳은 핏덩이와 태아를 다르게 본다면 위헌, 비슷하게 본다면 합헌으로 가기가 쉽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현실적으로 임신 12주 이내의 낙태에 대해서는 자격을 갖춘 의사가 시술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허용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의학적, 윤리적 사유들과 사회적 경제적 사유들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것인가요? 구체적으로 미성년자가 임신한 경우에 있어서 몇 살까지는 의학적으로 위험하고 그 이후는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육체적 생리적 성숙도는 개인차가 굉장히 큽니다. 또한 강간과 의도치 않은 원나이트는 어디까지가 강간이고 어디까지가 원나이트인가요? 이는 사실 확실한 폭력의 입증이 없는 한에는 여성 자신의 진술에 의존하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이러한 경계는 매우 모호해서 현실적으로 한쪽만 허용하고 다른 쪽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힘듭니다. 그 결과가 결국 합법적으로 탈을 쓴 사회적 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가 만연하는 현실입니다. 영아살해죄에 대해서는 낙태를 하지 않았으므로 분만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낙태 합법화를 전제로 하면 피해갈 수는 있습니다. 즉 모든 낙태를 금지하지 못한다면 안전을 조건으로, 임신 초기의 낙태는 허용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오히려 가부장적인 문제는 낙태를 허용했을 때 크게 불거집니다. 결혼한 상태인 임부의 경우, 낙태에 남편의 동의가 필요할까요? 또는 최소한 남편은 부인이 낙태를 한다는/했다는 것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어야 할까요? 이혼 시에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낙태 경험이 위자료 산정에 고려되어야 할까요, 아닐까요.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부모 등의 친권자가 낙태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는 미성년인 임부는 낳고 싶어하는데 친권자는 낙태를 원하는 상황이 일반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가부장적인 문제 뿐만이 아닙니다. 프라이버시권(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도 걸립니다. 각종 의료보험 가입시 낙태 경험 여부는 보험사에 고지해야 하는 정보일까요? 다시 아이를 임신하여 낳고 싶을 때 낙태 경험을 산부인과 의사에게 알려야 할까요? 지금까지는 불법으로 인해서 낙태에 대한 정보는 아예 없는 셈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만, 낙태를 합법화하는 순간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여성 인권에 대한 논의를 한다면 이러한 부분도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산사가 문제삼은 형법 제270조 제1항은 낙태금지를 전제한다면 의료지식이 있는 자가 낙태를 도운 것이므로 더 큰 처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는 헌재에 이견이 없었습니다.

짧게 쓰려고 했는데 상당히 길어졌습니다. 네 줄 요약 넣겠습니다.

  1. 태아를 언제부터 사람과 비슷하게 보호할 것인지는 그 근거를 “사람이 될 가능성”이냐, “생리적 정신적 독립성”이냐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갈립니다.
  2. 사회적 경제적 사유 즉 부끄럽거나 키울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낙태를 허용할 것이냐. 이는 결국 1.의 입장에 따라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느냐, 와 임부의 권리 아니냐로 의견이 갈립니다.
  3. 이 두 의견들 모두 임신 12주 이후의 낙태는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위헌의견에서는 임부의 생명과 건강을 그 주된 이유로 듭니다.
  4. 임신 초기 낙태를 합법화한다면 그 진료기록에 대한 보존, 공개, 고지 여부는 여러모로 굉장한 문제가 됩니다.

한민족의 근대화에 대한 단상.

– 예전에 써놓고 공개하지 않았던 글인데, 그 때는 더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괜찮겠다 싶어서 공개합니다.

조선-한국의 근대화 논의를 보면서, 나는 혜초 선사와 소중화(小中華)를 떠올린다. 우리나라 제헌사(헌법 제정 역사)를 보면 독일에서 법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줄줄이 나온다. 이승만이 (말그대로) 깽판을 쳐서 그렇지, 제헌 헌법 초안들은 후일 독일 기본법(독일헌법의 정식명칭)보다 나은 부분이 있을 정도로 매우 뛰어난 부분들이 많았다. 이는 일본이 패전후 메이지 헌법을 국민주권주의에 입각하도록 바꾸질 못해서 맥아더 휘하 극동사령부가 사실상 현행 일본 헌법을 작성했던 것과 크게 비교된다. 학문적 깊이야 일본에 비할 수준이 아니었겠지만, 최소한 조선인들은 현대적 헌법을 스스로 (독일 이론을 베껴오던 어쨌든 간에) 작성할 정도의 역량은 가지고 있었다. 신라의 혜초 선사는 천축에 가서 불법을 배웠고, 조선은 소중화를 외칠 정도로 유학을 번성시켰다. 그러한 전통 속에서 한국은 독일에서 직접 법학을 배워온 학자들이 독일이론에 입각해 헌법을 작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한국인들은 지주-자산가 계급일수록 유학 보내기에 열을 올렸는데, 유교적 전통이 파괴된 식민지 조선에서 그 대상은 일본을 통한 서양 문명이었다. 광복 후 이는 미국으로 강력히 집중된다. 구 일본제국은 한반도에 이런저런 인프라를 지었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관동군으로부터 인적, 정신적으로 승계된 군사국가주의문화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다. 박정희는 식민지 조선을 만주국 스타일의 공업군사국가로 개조해갔다. 그렇다 할지라도 한국은 광복부터 지금까지 小美國을 지향하는 국가로 존재하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거의 모든 인프라가 파괴되었어도 인재와 지식은 남아있었고, 능력이 되는 이들은 미국으로 수도 없이 유학을 떠나고 문물들을 들여왔다. 다녀오지 못하는 이들은 군수지원이든 기독교 선교사들이든 쓸 수 있는 연줄은 모두 동원해서 미국을 배우고 따라하는데 열중했다. 결국 한국의 현대사는 만주국을 지향하는 관동군 문화와 소미국을 지향하는 민간인 문화의 격렬한 충돌사라고 볼 수 있겠다.

대의제 정치의 목표: 김규항씨의 인터뷰.

링크: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인터뷰 – 노동과세계

대체적으로 위 기사는 개혁세력 지지자라면 꼭 읽어봐야 할 내용들이다. 한국 사회 미래의 기틀을 잡는 교육이 어떠한 문제에 노출되어 있는지, 노동운동의 입장에서 과연 민주화세력 집권 10년이 어떤 의미였는지 등 절절한 내용들이 많다. 김규항씨의 블로그도 추천한다. 다만, 한가지 걸리는 점이 있어서 커멘트를 붙여보려 글을 쓴다.

△노동계급이 가져야 할 운동의 중심성이라면?=사실 한국에서 유의미한 정치적 변화는 언제나 의회가 아닌 길거리에서 이뤄졌다. 촛불항쟁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의회와 제도정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이상한 강박을 갖고 있다.

사람들이 의회와 제도정치에서 해결을 보려고 하는 것은 이상한 강박이 아니라, 그 것을 목표로 노력하는 것이다. 난 촛불항쟁을 불행한 사태였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의 불안과 불만이 제도정치 내에서 충분히 흡수-대응되지 못하고 결국 거리로 터져나온 사고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언제나 예외적 사태는 있기 마련이고, 길거리 시위가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국민 주권의 행사 방법 중 하나인 것은 맞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의회에서 해결해보려고 하는 노력, 또는 강박을 부정적으로 – 이상하다고 – 볼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한국 제도정치는 노동자 계급의 연대를 최대한 방해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개혁세력 또한 그러한 자본으로부터의 요구에는 저항하지 못하지 않았나? 사실, 그 의문은 맞다. 최근의 웃기지도 않는 예로 청목회 사건이 있는데, 이 사건은 단체로부터의 정치자금을 금지하고 있는 정치자금법을 어긴 사건이다. 문제는, 이 법이 처음에는 단체 기부는 허용 단지 노동조합만을 금지하는 내용이었는데 헌법재판소에서 평등권 침해( 즉, 노조만 차별할 이유가 없다. )로 위헌 결정이 났다. 그러자 국회에서 모든 단체로부터의 기부를 금지하도록 개정했다. 사실, 평등권 침해였으니까 모두 금지해버리면 되기는 된다. 덕분에, 대선 때마다 거액의 헌금?을 하는 대기업들에 비해 노조는 경쟁할 자유조차 뺏겨버린 상태다. 이러한 제도정치는 절대적으로 고쳐나가야 한다.

다만 그것은 정당이라는 제도 하에서 이뤄져야 한다. 내가 도그마틱한 입장이어서가 아니라, 길거리는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 거리에 나와 시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87년 대항쟁이 민주노총을 낳고, 또 민주노동당, 다시 진보신당까지 만들어왔다. 오히려 노동운동 측에서는 어째서 노동자들조차도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을 찍지 않는지, 참여하지 않는지부터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나는 최장집 교수의 입장에 충실한 편이기는 하다.

– 김규항씨의 인터뷰를 읽다가 예전부터 궁금하던 사항: 어째서 그리들 제도 정치를 싫어하는가? 길거리를 선호하고 제도정치 개선에는 관심이 없는가?가 떠올라서 써 보았다. 인터뷰에 대한 커멘트라기 보다는 그 것을 화두를 잡아서 써내려간 내용이라서 삼천포로 빠진 기분이 안 드는 것은 아닌데, 인용어구와 논점이 틀린 부분은 너그러히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다. ^^;

자본주의연구회: 헌재 위의 경찰?

링크: 대학생 학술모임 “자본주의 연구회” 국가보안법 적용 – 경향신문

경찰은 공부 좀 했으면 한다. 국가보안법 관련 위헌 소송에서, 헌재는 법조문을 최대한 축소해석해서 “명백한 위험성”을 추가로 요구하는 일관된 입장을 지켜왔다. 이는 이 사건의 제7조에 대해서도 명확히 한 판례가 있다.

법 제7조 제1항은 그 소정의 행위가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만 적용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 2004.08.26, 2003헌바102, 01010002

아무리 생각해도 자본주의를 연구하는 학술동아리모임이나 포럼이 대한민국 존립과 질서에 명백한 위험인가? 수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위험성이 드러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민주당과 민노당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결국 이번 수사는 법령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서… 라고 밖에는 보이지가 않는다. 이래서야 독립된 수사권의 확보는 여전히 무리다. 한 10년은 더 필요하지 않을까. 만약 이번 수사가 충성도 과시나 성과를 올리기 위해 무리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일관된 해석과 입장은 그런 목적들로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검찰의 경우, 기소한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나면 기소한 검사는 큰 페널티를 받는다. 덕분에 형사 사건에서 검사의 승소율이 매우 높은 편인데, 부작용도 있지만 질만한 사건은 아예 기소하지 않는 장점도 크다. 경찰의 경우에도 검찰이 수사 지휘 후 페널티를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민노당은 정당이 맞는가? 걍 찍으라고요?

링크 #1: 이정희 “北 비판하라는 <경향>, 국보법 법정의 논리” – 프레시안

링크 #2: 북한 당대표자 회의 관련 민노당 논평

링크 #3: 위 논평을 비판하는 경향신문의 사설

말하지 않을 자유, 침묵할 자유는 표현과 양심의 자유로서 보호된다. 이정희 의원이 항변하듯, 남한 정부를 비판하는 피고인이 북한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에는 침묵할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그것은 맞다. 필자도 이정희 의원 개인이 침묵하겠다면 그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같은 정당은 아니다. 일개 단체라면 상관없지만, 정당은 그러해서는 안 된다. 정당은 국가와 국민을 잇는 정치적 중개자로서, 헌법적으로 보호받는 특권단체로서 그 정견(政見)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모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국민 개개인이 그 정당을 찍을 지 안 찍을 지, 지지할 지 말 지를 결정할 수 있다. 지역주의수구정당들에게는 묻지마 지지를 강요한다면서 날선 비판을 던지는 민노당이 이번에는 자신들은 침묵하겠다고 한다. 그러면 국민들은 민노당의 태도를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찍어달라는 말 밖에 더 되는가. 지역기득권 수구정당과 민주노동당이 그 지점에서 무엇이 다른가?

링크2번의 민노당 논평을 보면 북한의 문제는 북한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건 정부에서나 할 말이다. 북한의 현 상태에 대한 평가와 북한을 대하는 정책은 다른 층위의 문제다. 그리고 정당은 국민들에게 자신들이 어떠한 가치와 정책을 지향하는지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정희 의원의 항변은 그런 점에서 개인이 가지는 침묵의 자유를 정당의 의무를 피하는 핑계로 대고 있다는 점에서 심대한 오류가 있다. 간단히 말해서, 세금을 받아먹으면 뭔일을 하려고 하는지 설명하는 밥값 정도는 하란 말이다.

더구나 조선로동당은 대한민국 정부와 정당들에게 날서다 못해 막말 수준까지의 비판을 퍼붓지만, 그 것만으로 남북관계가 파토난 적 없다. 민주당이 북한을 까도, 심지어 비난이라면 일등이었을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도 협상은 잘만 했다. 그러니 민주노동당이 뭐라하면 남북관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걱정은, 오히려 수권능력만 의심하게 만드는 자충수이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변명은 딱 이정도일 것이다: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 의견이 안 모인다면, 당론 정하기가 힘들다면 이 정도까지가 한계다. 미안하지만 정당에게 (미루고 미적거릴지언정) 침묵할 자유는 없다. 그걸 안하겠다면, 정당 해체하고 운동단체로 돌아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왜 그러세요, 아마추어같이?

– 물론, 민주노동당이 뭐라고 언급만 한다면 그 또한 민주노동당의 입장으로서 인정하겠다. 지금 비판하는 점은 정당에게 침묵의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정희 대표의 논점에 있다.

민주공화국의 적들 – 보완.

링크: 민주공화국의 적들

밑 글에서 “헌법에 근거도 없이 특정한 위치에 서는 사람들, 그 것도 특정한 시기 이후의 사람들에게만 법을 적용하지 말자는 것이다.”라고 썼는데, 사실 법률에서 어떠한 법률의 적용대상을 제한하는 조항들은 매우 많습니다. 특별법들은 대부분 일반법들의 적용을 제한하고 자신들을 적용하는 법들입니다. 사실 위 문구를 정확하게 쓰자면 “헌법과 법률의 근거도 없이”라고 써야 합니다. 다만 한나라당이 주장하듯이 법률 개정이 아닌, “사회적 합의”로 (즉 해석 또는 적용 단계에서) 법률을 명백하게 배제하려면 적어도 헌법에 근거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법률은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석-적용단계에서 법률을 배제하려면 헌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쓰기에는 글 흐름 상, 그리고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는 너무 복잡하게 되는 것 같아 생략했습니다. 생략하고나니 논리전개상 건너뛴 부분이 있어 언급합니다. 그리고 설사 한나라당이 그러한 내용의 법률을 만들거나 개정한다고 해도 그 법률은 헌법 제11조 위반으로 위헌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인사청문회에서 요구되는 수준과 불법을 따지는 수준은 다르지 않은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현 상황은 요구 수준의 높낮이가 문제가 아니라, 일반 국민과 공직후보자들 사이의 불법 기준이 다르다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즉 일반 국민들은 위장 전입을 하면 불법을 저지른 것으로 형사처벌을 받는데, 공직후보자들에게는 불이익을 인정하지 말자는 것이 문제입니다.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이라면 왜 일반 국민은 주민등록법 제37조 제3호에 따라 형사 처벌(3년 이하 징역,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아야 합니까? 인사청문회에서 문제삼지 않으면서 법의 평등을 지키려면 법을 배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해석을 통해 법률의 적용을 배제하려면 적어도 헌법적 근거는 필요합니다. 결국 다시 법 적용의 문제로 돌아갑니다.

혹시 더 보완할 점이 있으면 댓글 주시면 시간나는대로 더 써 보겠습니다. 다만, 빠른 업데이트는… 이 블로그의 업데이트 속도를 보시면 알겠지만, 보장 못 해드리겠습니다만 그 점은 용서 바랍니다. ^^;;

민주공화국의 적들.

링크: “장관 위장전입은 ‘사회적 합의’, 서민은 ‘법대로’?” – 프레시안

민주공화국에서 법적용에 대해 특권을 인정하라는 주장은, 국체(國體)를 바꾸자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한나라당이 쿠데타 세력의 후예인 전통에 충실하게 헌법을 무시하는 그런 주장을 내놓았다. 헌법 제11조는 다음과 같다.

제11조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③훈장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만약 한나라당이 주장한 것이, 주민등록법 상의 위장전입이 이미 만연하여 실효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불법으로 논하지 말자, 라면 이렇게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전 정권에서 한나라당이 동법 위반을 들어 후보자들을 낙마시킨 업적들 덕분에 찬성할 수는 없겠지만서도.) 법해석에 대한 의견 정도는 누구나 내놓을 수 있는 것이고 법의 제정과 개정에 깊숙히 개입하는 정당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헌법에 근거도 없이 특정한 위치에 서는 사람들, 그 것도 특정한 시기 이후의 사람들에게만 법을 적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헌법 제11조 제1항의 차별을 넘어서 동조 제2항의 특수계급 창설로까지도 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대통령이 지명하면 그 후보자는 자동적으로 주민등록법이 “완화”되어 적용된다. 이거야말로 특수계급이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 헌법은 국회의원들에게 제한적으로, 대통령에게 일시적으로 딱 두가지의 예외만 허락해 놓았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주장이 귀족계급을 창설하자는 이야기나 진배없다는 점을 알까?

제기랄, 우리는 집권 여당이 민주공화국의 적들이 말할만한 논리를 전개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 박지원 의원이 언급한대로, 만약 주민등록법을 안 어기는 사람들이 없어서 법적용이 곤란하다면 법을 개정하면 될 일이다. 누구누구들에게만은 적용하지 말자고 할 것이 아니다.

+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적들을 잡아야 하는) 검사 출신의 홍준표 의원이 맞장구를 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더 속이 아프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도 검사 출신이다.

+ 이걸로 또 ㅆㅂㄹㅁ 태그가 늘어나는구나. 옆에 달아놓은 태그 클라우드 보기가 민망하다. 커다란 몇몇 태그들을 보자니 쓰라리다. 걍 카테고리들만 냅두고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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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덧붙이는 글이 있습니다. 그 글도 읽으시면 좀더 이해가 편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

경찰과 헌법시험의 필요성.

링크: 경찰, MBC 생방송 스튜디오 무단 난입 “질문지 보여달라” – 프레시안

경찰간부시험과 승진 시험에 헌법을 무조건 필수과목으로 넣어야 한다. 특히 기본권에 관련된 부분을 중점적으로 공부시켜야 한다.

요즘 경찰이 치는 사고들을 보면 확실히 경찰대를 폐지해서 간부들의 인력풀을 넓히고, 그 감찰을 감사원이나 인권위, 혹은 공직자비리수사처 같은 외부 기관에 맡겨야 하는 쪽이 낫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기본조차 못 지키는 사람들에게 수사권을 준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확실히 한국에서 검찰의 권한이 위험할 정도로 거대하지만, 그렇다고 그 권한을 경찰에게 나눠준다면 더욱더 끔찍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조직이 바뀌려면 지금부터 시작해도 몇십년은 걸릴 것 같다는 것이 더욱 슬프다.

저런 쓸데없는 사고는 잘 치면서, 정작 본분이라 할 수 있는 치안활동에서는 인력이 없어서 난리라고 한다. 언제나 고생하는 경찰분들은 고마우신 분들이다. 하지만 아무리봐도 경찰 조직 자체는 – 그들 자신에게나 국민에게나 – 문제덩어리인 게 맞다. 어떻게 해야 경찰 자신들도 만족스럽고, 국민들도 잘 보호받는 제도를 만들 수 있을까? 씁쓸하다. 차라리 지역경찰청장을 주민선거로 뽑는 편이 훨씬 더 나을 듯 싶다.

혼인빙자간음죄 위헌 결정에 대한 소고: 일단 간단하게.

헌법재판소가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위헌을 선고하였다. 인터넷 반응이나 언론에서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인정된 판결이다, 라는 평가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헌재가 성문제에 대해서 형법적 간여를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본다. 이후 간통죄에 대한 헌재의 판단을 주목할 시점이다.

혼인빙자간음죄는 형법상 범죄로서 조문은 다음과 같다.

제304조 (혼인빙자등에 의한 간음)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개정 1995.12.29>

(출처 : 형법 제07623호 2005.7.29 )

전형적인 예로 결혼하기로 하고 성관계를 맺은 (남성이 미혼여성에게 말하는, 서방님 믿지? 가 바로 그것이다.) 남성을 처벌하는 조항이다. 굳이 결혼이 아니더라도 그 정도 수준으로 여성이 성관계 결정의 동기(이유)에 대해 착오를 불러올 수 있는 거짓말이면 모두 이 범죄에 해당된다.

예전부터 간통죄와 함께 가장 빨리 없어져야 할 형법상 범죄로 꼽혀왔는데, 이번 위헌 결정으로 소급적으로 무효가 되었다. 즉 현재 이 범죄로 전과자 딱지를 달고 있는 모든 남성들은 재심신청을 해서 무죄판결을 다시 받을 수 있다. 고소한 여성을 무고죄로 처벌받게 할 수는 없겠지만.

헌재는 “남성의 성적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침해를 혼인빙자간음죄 위헌 판결의 이유로 꼽았다. 더 자세히는 남성의 그 권리들을 제한하는 혼빙간 범죄가 목적의 정당성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그 근거들 중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해 중요한 것만 추리면 다음 두 가지 정도이다.

  1. 혼빙간 조항이 음행의 상습이 없는, 즉 1명 이하의 남성과만 성관계를 맺는 여성만을 보호하고, 다수의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여성 전부는 보호하지 않는 것은 가부장적 성 이데올로기의 강요이고 여성비하(여성부 의견)이므로 보호가치가 없고,
  2. 여성은 성적자기결정권이 있으므로 자신이 동의해서 성관계를 가졌는데, 해악적이지 않은 통상적인 과장-유혹이었다면 속았던 것이어도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더 이상 여성을 두 부류로 나누어 고전적 정조개념만을 보호함으로써 여성에게 가부장적 성윤리관을 강요하면 위헌이라고, 또한 국가는 여성이 성관계를 맺을 때  그 성질이 해악적이지 않으면 과장해서 유혹한 남성을 형법적으로 처벌해주지 않겠다고 헌재가 선언한 것이다.

물론 형법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고 해서 민사상의 위자료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에 대해 고소한다면 법정에서 속아서 성관계를 맺은 여성의 아픈 마음이 금전으로 얼마나 되는가에 대해서 다퉈야 하겠지만서도. 아마도 개인적으로는 민사상으로도 불법이라고 보기 힘들 것 같고 원칙적으로는 경제적 손해가 없으니 손해배상은 안 될 것 같다. But 경제적인 이익을 얻었으면 (용돈 타 쓰거나 돈을 빌렸다면) 사기죄에 해당한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상호합의에 의한 성관계에 대한 형사처벌을 폐지했다는 점에서는 환영이다. 그리고 여성의 성적 결정(몇 명하고 자던 법적인 보호가치에 차이를 두어야 하나?)에 의해 여성을 두 부류로 나누어 형법적 보호를 차별하는 점은 여성 비하이며 위헌이 맞다. 또한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인정하면서 그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남성이 여성을 속여서 간음하여도, 동의한 여성이 책임을 지는 것이고 범죄가 아니다.

헌재는 “남성의 성적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침해 때문에 위헌결정을 했다. 이는 감옥 갈 걱정 없이, 상당히 큰 과장으로 속여서라도 여성의 동의만 얻어내면 OK라는 판결이기도 하다. 국가는 (미혼!)남성의 유혹이 진정한지 아니한지는 이제 형법적으로 관여할 수가 없다. 간단히 말하면 지금까지 남성의 허풍과 거짓말투성이 유혹을 할 권리를 혼인빙자 수준 이상은 금지하고 있었는데, 풀어버렸다. 면죄부를 준 셈이다.

다만, 그 과장과 기망에 대해서 헌재는 “해악적이지 않은”, “통상적인”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 한계를 생각하자면 일단 강간죄 수준의 폭행이나 협박, 위력은 안 된다. 그리고 혼인 빙자에 대한 처벌을 단순위헌으로 본 것으로 보면 차후 판례에서 추가로 정해져 나가겠지만, 일단은 여성의 의사를 강압하지 않으면서 유혹/유도하는 정도의 허위성은 조건없이 허락한다고 볼 것이다.

즉, 헌재는 도덕적-윤리적인 면에서 그 과정에 혼인 빙자 정도로 큰 문제가 있을지라도, 또한 어떤 행위를 할지라도 사생활의 영역이면 미혼남녀의 성적 결정에 대해 형법적으로 전혀 관여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한 것이다. 이는 앞으로 성문제에 관한 한 상당한 수준의 자유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한다.

다만 행위는 그렇다치고 유혹의 과정에 있어서 알았다면 원치 않았을 성관계를 속여서 맺는 것이 경제적 이익(이건 사기죄)을 얻는 것과 비교해서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더 불법하지 않은 행위인가? 이는 좀더 생각해볼 점이 있다. 하지만 리버럴로서 (어쩌면 남자로서?) 문제많은 기존 혼빙간을 폐지하여 자유를 증진한 이번 결정을 지지한다.

P.S. 그리고 헌재의 이 태도가 미혼을 넘어서 배우자가 있는 기혼남녀에게까지 이어질 것인가가, 간통죄에 대한 앞으로의 키 포인트이다.

P.S. 2. 설마 이거 저출산 대책은 아니겠지? (농담입니다.)

이는 감옥 갈 걱정 없이, 상당히 큰 과장으로 속여서라도 여성의 동의만 얻어내면 OK라는 판결이기도 하다. 국가는 (미혼!)남성의 유혹이 진정한지 아니한지는 이제 형법적으로 관여할 수가 없다. 간단히 말하면 남성의 허풍과 거짓말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