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근대화에 대한 단상.

– 예전에 써놓고 공개하지 않았던 글인데, 그 때는 더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괜찮겠다 싶어서 공개합니다.

조선-한국의 근대화 논의를 보면서, 나는 혜초 선사와 소중화(小中華)를 떠올린다. 우리나라 제헌사(헌법 제정 역사)를 보면 독일에서 법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줄줄이 나온다. 이승만이 (말그대로) 깽판을 쳐서 그렇지, 제헌 헌법 초안들은 후일 독일 기본법(독일헌법의 정식명칭)보다 나은 부분이 있을 정도로 매우 뛰어난 부분들이 많았다. 이는 일본이 패전후 메이지 헌법을 국민주권주의에 입각하도록 바꾸질 못해서 맥아더 휘하 극동사령부가 사실상 현행 일본 헌법을 작성했던 것과 크게 비교된다. 학문적 깊이야 일본에 비할 수준이 아니었겠지만, 최소한 조선인들은 현대적 헌법을 스스로 (독일 이론을 베껴오던 어쨌든 간에) 작성할 정도의 역량은 가지고 있었다. 신라의 혜초 선사는 천축에 가서 불법을 배웠고, 조선은 소중화를 외칠 정도로 유학을 번성시켰다. 그러한 전통 속에서 한국은 독일에서 직접 법학을 배워온 학자들이 독일이론에 입각해 헌법을 작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한국인들은 지주-자산가 계급일수록 유학 보내기에 열을 올렸는데, 유교적 전통이 파괴된 식민지 조선에서 그 대상은 일본을 통한 서양 문명이었다. 광복 후 이는 미국으로 강력히 집중된다. 구 일본제국은 한반도에 이런저런 인프라를 지었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관동군으로부터 인적, 정신적으로 승계된 군사국가주의문화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다. 박정희는 식민지 조선을 만주국 스타일의 공업군사국가로 개조해갔다. 그렇다 할지라도 한국은 광복부터 지금까지 小美國을 지향하는 국가로 존재하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거의 모든 인프라가 파괴되었어도 인재와 지식은 남아있었고, 능력이 되는 이들은 미국으로 수도 없이 유학을 떠나고 문물들을 들여왔다. 다녀오지 못하는 이들은 군수지원이든 기독교 선교사들이든 쓸 수 있는 연줄은 모두 동원해서 미국을 배우고 따라하는데 열중했다. 결국 한국의 현대사는 만주국을 지향하는 관동군 문화와 소미국을 지향하는 민간인 문화의 격렬한 충돌사라고 볼 수 있겠다.

한국 소설을 읽어볼까 생각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어릴 때 30권짜리 한국문학전집(생각해보면 참 성인용?이었다…)을 독파한 이후로 역사소설들을 빼고는 거의 한국 소설을 읽지 않았다. 아마 일본 소설을 가장 많이 읽었고 구미와 한국 소설이 비슷비슷 할 거다. 그나마 한국 젊은 작가의 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다는게 옳은 표현이다. 가끔씩 문학상 수상단편집을 사서 본 정도다. 내 독서는 서브 컬쳐(하여간 이놈의 허영심… 그냥 만홥니다. 만화랑 라노베요.)계열을 빼놓고 또 역사와 철학, 과학계열들을 빼고나서 문학으로 들어오니, 그 알량한 나머지도 과반수가 일본 작품들이다. 그중 일본 역사소설들은 많이 안 읽고 이쪽은 한국 소설들만 읽었다는 것. -_-;;; 결국 현대 한국인들의 감수성?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었다, 가 내 본심이다. 그에 더해서 지금의 한국 문학은 대중적이어서 참고자료가 되는 것은 고사하고, 한량들의 타이틀 따먹기 같다는 인식도 있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몇몇 읽은 소설들의 경우, 그런 비틀림들을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시간적으로 검증?된 나이드신 작가들의 작품들만 읽었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지금 한국인들이 보고 있는 세상은 무엇인가도 궁금하기도 하고, 그놈의 리얼리즘 전통이 어떻게 변주되고 있는가도 관심이 있다. 서점에 가보면 한국 소설들이 많이 늘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엄격하고 폭력적이지만 소득수준이 올라간만큼은 도전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진도 몇몇 보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서적을, 들고다니면 남들에게 지력 +2로 보이는 아이템 취급하는 세태 중에서도 뭔가 새싹이 트는 것 같기도 하다. 벌써 한국 소설을 읽은지도 수년이 지났고 그간 우리들은 큰 변화를 겪어왔다. 그런 면에서 조금더 한국 소설들을 읽어볼까 생각한다.

– 요즘 서브 컬쳐들을 못 따라가는 내 낡은 감수성?도 큰 이유다. -_-;;

시티헌터가 마세라티를 탄다고?

링크: 역시 이민호! ‘시티헌터’에서 마세라티 탄다 – 카라이더 뉴스

사에바 료라면 리볼버와 오리지널 미니가 생각나는 나로서는, 역시 한국 드라마는 원작과는 상관없이 산으로 간다는 편견을 굳히게 됐다. 제작진이 호죠 츠카사(원작자) 선생에게 뭐라고 했길래 선생이 허락을 한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고급차를 몰고 다닐 정도로 돈에 풍족한 시티헌터라니… 설마 한강변에 있는 고급 펜트하우스에 사는 설정은 아니겠지? -_-;;

– 차는 당연히(?) BMW 미니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의외였다.

일본의 동북해 지진.

저녁 먹으러 나갔다가 일본 동북지역 근해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들었다. 진도가 8.8. 아마 기억에 한신 대지진이 진도 7.X대였을텐데, 약간 먼 바다에서 터져서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TV에서 센다이가 쓸려나가는 영상이 흘렀다. 그리고 그 즉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저 정도 지진이면 어디서 발생하든 괴멸적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이어지는 뉴스들을 종합하면 일본 간토지역은 현재 완전 마비 상태인 듯 하다. 부디 이 지진이 단발성으로 끝나기를, 그리고 일본 현지에 있는 모든 이들이 무사히 이 시련을 넘기기를 빈다.

호시노 유키노부의 Moon lost, 그리고 만화시장에 대한 단상.

서점에 갔다가, SF만화가인 호시노 유키노부 씨의 작품이 번역 출간되었길래 집어들었다. 총 2권의 Moon Lost(이하 “문로스트”). 요약하자면 잃어버린 달을 되찾기 위한 머나먼 여정기인데, 우주의 거대함을 잘 그려내는 작가의 특기가 유감없이 잘 발휘된 작품이었다. SF의 가장 큰 매력일 과학적인 가설들에 대한 사고놀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달이 없어지면 지구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등등. 개인적으로는 자전축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북극점이 이동하지만 자전의 회전은 그대로라서 백야 현상이 대대적으로 나타나야 할 것 같은데, 그에 대한 가설들이 틀린 것 같았다. 옛적에 천왕성과 같이 지구의 자전축이 태양쪽으로 90도 틀어지면, 즉 북반구는 계속 낮이고 남반구는 밤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해본 적도 있어서, 이 발상이 매우 재미있었다.

스토리 자체가 흥미진진하다고 하기에는 조금 힘들고, 단편인 관계로 전개는 엉성한 부분도 많지만 역시 작가의 명성대로 SF의 사고놀이의 매력만으로도 일독을 권할 만 하다. 오랫만에 매우 재미있게 읽은 만화였다. 또 환경의 격변이 일어났을 경우 손해보는 국가가 강대국이라면 과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시사점도 인상깊었다. 악의 제국 미국과 인류를 생각하는 리더십의 유럽을 너무 대비시키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과연 유럽은 그럴만한 국력이 남아있기는 한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재미를 떨어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오랫만에 만화서점에 가보니 소매판매를 목적으로 일본에서 명성있는 작품들을 고급스럽게 찍는 흐름이 보였다. 3,40대의 오타쿠들이 알고 좋아할만한, 일본에서는 절판되었을 정도로 오래된 작품들이 새로 출판된 책들이 상당히 많아서 놀랬다. 건담 소설판들이라던가, 방금 소개한 호시노 유키노부, 그리고 이가라시 다이스케 등 SF작가들의 작품들이라던가. 간다무상이 번역출판된 것을 보고 기겁하기도 했지만. ^^;; 최신작들은 주 고객인 학생들이 대여점이나 불법스캔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수익이 안 나니, 소매용으로는 구매력있는 아저씨 아줌마들을 위한 옛날 작품들을 새로 찍어내는구나 싶어 씁쓸했다. 물론 나야 옛날부터 관심이 있었던 책들이 정식번역본으로 나와주니 좋기도 하고, 어떤 의무감?에라도 사서 보고 있지만 과연 10년 후에도 30대가 된 아이들이 또 그럴 것인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만화, 아니메 등의 서브컬쳐는 젊은이들의 취미였는데, 이제 슬슬 일본과 비슷하게 중년층의 지갑에 의존하는 시장이 되어가는 듯 하다.

그런 면에서 애니플러스가 일본 아니메 비즈니스를 시작한 것이라던가, 몇몇 출판사들이 한국 작가들의 라이트노벨들을 실험해보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비즈니스로서 성립하고 또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은 앞으로의 한국만화시장이 존속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서도, 이러한 기본이 안 지켜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일본의 고민: 10년 뒤의 수출은 어찌할 것인가.

엔화 강세를 멈출 수가 없다. 일본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을 하고, 양적 완화를 천명해도 시장은 꿈쩍도 않고 엔화를 밀어올리고 있다. 1달러당 80엔이 깨지기 직전이다. 미국 FED가 2차 양적 완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 지경이니, 만약 버냉키가 강하게 달러를 다시 뿌리기 시작한다면 엔 환율은 최고 기록을 계속 경신해 나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일본 정부는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누구도 일본이 미국의 달러 뽐뿌에 맞서서 엔을 늘릴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엔은 사실 늘어나기 힘든 통화다. 미국이 전시를 제외하고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통화량을 증가시키고, 유로는 PIIGS로 대표되는 취약점 때문에 어느 정도 약세고, 위앤화는 대놓고 고정환율을 지키고 있는 와중에 엔만이 믿을 수 있다는 시장의 판단은 틀리지 않다. 그 근거는 일본 정부의 경이적인 공공 부채. 외화표시 부채는 거의 없고 대부분을 국내에서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은 미국만큼 정부 부채를 늘려가며 양적 완화를 할만한 여유가 없다. 민주당 정부가 대대적 복지 지출을 약속하고 있기도 하니, 일본 관료들이 총리대신이 직접 전화를 해야 간신히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이유도 알 만하다. 빚은 산더미고 여당은 지출 확대를 공약하고 있는 와중에 어느 관료가 정부 부채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책임을 지려고 하겠는가.

엔화 강세가 일본에게 불리한가? 오히려 일본의 불황과 빈곤층 증가를 생각해보면, 강한 엔화가치는 수입물가를 낮춰서 일본국민들의 수입감소를 어느 정도 상쇄시켜주는 긍정적인 면도 강하다. 실질적으로는 다수당 의원내각제인, 정권유지가 매우 힘들고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일본 정치구조를 고려하면, 빈곤층의 생활고(=정권에 대한 불만)을 경감시켜주는 낮은 환율은 일본 정부에게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더해서 엔화의 국제화를 촉진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저리 비명을 지르는 것은 결국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 때문이다. 일본 재무상이 한국 정부의 환율 개입을 명시적으로 비난하기도 한 이유다. 이미 일본 전자산업은 잃어버린 10년 동안 생산시설 및 기술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고 고수익의 기술들(예를 들면, Play Station)에만 투자하다, 양산기술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에게 추월당한 전례가 있다. 아직 부품산업과 원료산업, 기계 산업 등에서는 우위를 잃지 않았지만, 낮은 환율 하에서의 투자 부진은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제조업에서 10년 후에도 우위에 있을지를 자신할 수 없게 만든다. 한국, 중국은 현재의 환율로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는 상대들이다.

즉 현재 엔 강세의 효과에 단맛만 보고 있다가, 10년 후에 제조업의 수출이 붕괴될 위험이 매우 높은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 영국처럼 서비스업에서 어떻게든 메꿔볼 만한 경쟁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일본은 향후 20년은 계속 제조업 중심으로 수출을 해야 하는데, 강한 엔은 제조업의 설비투자를 고사시킬 위험성이 크다. 단적인 예로 이미 일본 내에서만 생산하는 자동차 업체들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고, 닛산, 도요타 등은 해외 생산분을 일본에 역수입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을 지경이다.

제조업의 생산 경쟁력을 지키려면 엔화를 조정해야 하는데, 미국은 자기들 국내 문제 때문에도 꿈쩍도 안 한다. 그렇다고 맞서서 같은 방법으로 엔화를 풀자니 그 한계를 뻔히 아는 시장도 코웃음만 친다. 지금 당장은 좋지만 이러다간 10년 내에 한국, 중국에게 크게 당할 것 같다. 하지만 뭔가 해보려면 정부 부채 때문에 아무 것도 먹히질 않는다. 금융 등 서비스업으로 수익을 내기에는 서구와 경쟁할 수가 없다. 압도적인 약점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일본의 끔찍한 딜레마다.

이유 – 미야베 미유키

미야베 미유키(이하 미야베)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이다. 찬사와 혹평. 무라카미 류조차도 이렇게 혹평 당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작가를 평하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은 혐오감에 가까운 감정마저 표출하곤 했다. 부정적인 이 중에서 가장 나은 이가, "훗, 미야베 미유키?"였을 정도였다. 찬사로는 작가 소개에 쓰인 무라카미 하루키에 쌍벽을 이룬다는 평이었다고 해두자.

소설이란 독자를 위무해야 하는가? 아니면 지은이의 사상을 드러내야 하는가? 미야베는 두가지 모두 거부하는 듯 하다. 마치 소묘화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그저 하나하나 펜으로 찍어그린다. 우울만이 느껴지는 Deep dirty green의 거대한 소묘화. 점 하나하나에는 어떠한 감정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귀찮은듯이 찍어놓은 한 챕터 한 챕터가 모여나가는 작품이었다.

다 읽고나서, 이유는 한번도 다시 통독한 적이 없다. 다만 책상 위에 던져두고 생각날 때마다 아무 챕터나 펼쳐서 읽었다. 미야베에게 자신의 소설 속 사람들은 단지 자신이 그리고 싶은 큰 그림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그저 담담히 흔들리지 않는 건조하려고 애쓰는 시선과 묘사. 읽어나가면서 세계의 묘사를 위한 거리두기에 더해, 작가 자신의 격동에 대한 필사적 포장이라고 느끼게 됐다.

미야베 미유키는 성실한 작가다. 서비스 따위는 없고 심지어 퉁명스럽다. 자신이 쓰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모두 행간에 묻어두고, 단지 지독할 정도로 냉정한 척 서술해간다. 자칫하면 저 위의 시선으로 잘난 체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펼쳐 보여서 작가가 본 이 세상을 고발한다. 희망도, 평설도 없다. 단지 그가 그려놓은 것들만이 그를 보여줄 뿐이다. "세상은 이러니, 여러분들은 알아서 하세요." – 고발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사실 화차(火車)나 ICO 같은 다른 작품들을 본 후, 작가에 대한 평을 하고 싶었다. 시험이 끝난 후 시간이 생각보다 나지 않아서, 이유를 잊어먹기 전에 써 보았다. 이유는 어머니가 읽고 계신다. 그러니 이 평은 이유의 미야베 미유키에 대한 평이 된다. 하지만, 나머지 작품들이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날 것 같지는 않다. 스위트한 하루키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보드카 스트레이트. 나야 언제나 그렇듯이 보드카가 더 좋다. 그리고 모든 혹평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더헛, 일본정부 미 국채 투매 음모설? 하르마게돈의 시작?

링크: 갈수록 증폭되는 위조 미국 국채의 미스터리 from 프레시안

링크: Mystery of Fake U.S. Bonds Fuels Web Theories. from The New York Times

북한이 미국 국채를 위조했다는 뉴스가 갑자기 하르마게돈의 전주곡으로 변신할 수도 있다는, 얼빠지는 뉴스다. 몇 주 전에, 물경 1340억 달러 어치(원화가 아니다!!!)의 위조 미 채권을 가지고 스위스로 가려던 아시아인 일당?이 이탈리아에서 체포되었다는 뉴스를 봤었다. 그 당시에는 북한에서 위조한 채권이라는 점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 북한은 역시 별 찌질한 짓 다한다는 뉘앙스였다 – 그렇게 단순명쾌한?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_-;; 위 링크의 프레시안 기사를 읽다가 도저히 믿기 힘들어서 더 뉴욕 타임스의 기사까지 찾아서 읽어보니, 확실히 이상하다. 북한의 공작원이라면 체포해야 맞을텐데 현행범을 체포도 아니라 조사만 하고 풀어줬고(위조 채권을 고히 돌려준채), 일본영사관은 일당들이 유효한 여권 소지자들이었다고 확인까지 해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00달러짜리 슈퍼 노트 위폐야 어디든지 쓸 수 있다고 하겠지만, 한 장에 10억달러짜리 일련번호 매겨진 채권을 위조해서 어디에서 쓸 건가? 북한은 비자금 만들고 쓰는데는 도가 텄을 거다. 우리에게는 불행하게도 북한이 나쁜 국가일지는 몰라도, 무능하지는 않다. 무능했으면 우리가 좀더 편했겠지.

미국이 당장 채권은 위조라고 발표했는데, 왜 이탈리아 사법당국은 위조범들을 곱게, 그 것도 위조채권까지 돌려준 채 풀어줬을까? 아무리 부패했다고 해도 액수가 액수인데다, 일본인 맞다던데. 설마설마나 일본이 자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의 1/5을 한 방에 투매하려고 했다는 음모론이 사실이라면… 이게 하르마게돈이지 또 뭐가 있겠나. -_-;; 일본이 미국정부의 지불능력을 못 믿겠다고 선언한 거나 마찬가지인데. 아니면 미국정부의 부채는 이미 누구도 손 쓸 수 없을 정도의 규모를 보이게 되었고 그 규모는 일본정부만 알고 있다? 더헛. 그냥 부패의 이탈리아…가 여행기념품 사서 돌아가던 애먼 사람들 붙잡은 것이기를 두손 모아 빌어본다.

– 근데 음모론이 맞다고 해도 그거 맞다고 확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또 참. ;; 진실은 알고 싶은데, 저 너머에 있는 걸 가져올 수가 없네.

– 여행기념품으로 만들어 파는 대형 1달러 지폐가 생각났다.;; 사실은 기념품?;;;

– 뉴욕타임스가 미스터리가 있는데, 사람들이 별별 이야기가 다 하고 있다는 식의 기사를 쓴 것에 비해서 프레시안은 너무 선정적으로 기사를 쓰지 않았나 싶다. 뭐, 필자도 음모론이 막 땡기긴 했고 그 심정이 이해는 가지만 쪼끔 냉정해질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 음모론은 즐겁다. 거기에 설득될 것 같기 전에는.

가이도 다케루의 다구치-시라토리 시리즈

링크: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at 알라딘

가이도 다케루의 다구치-시라토리 시리즈는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나이팅게일의 침묵, 제너럴 루주의 개선으로 이어지는, 대학병원 내의 사건들을 다루는 미스터리 소설 시리즈이다. 출판사에서는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역자는 의학 판타지라고 평하기도 한다. “팀 바티스타의 영광”은 첫 작품의 일본명으로 일본에서는 드라마,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첫 작품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상을 수상했지만, 필자는 이 시리즈의 매력은 미스터리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시리즈를 소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확실히 추리소설이나 미스터리 소설이 되기에는 공간적으로나 등장인물 수로나 무대가 너무 넓다. 세 작품의 무대가 되는 사쿠라미야 대학병원에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작품 내에서 사쿠라미야 시에 더해 후생노동성까지 아울러서 역자가 사쿠라미야 월드라고 칭할 정도다. 추리소설의 정교함이 존재하기에는 넒은 편인 무대가 소설이 진행되면서 자꾸 더 넓어지고 새 인물들이 나타난다. 그나마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은 초점이 어느 한 수술팀으로 제한되면서 미스터리에 가까운 무대를 유지하지만, 나머지 두 작품은 대학병원 바깥까지 이야기가 흘러간다. 필자가 보기에는 무대와 주인공들을 공유하지만 이 세 작품은 옴니버스 구성으로, 각각의 장르가 다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작품별로 따로따로 소개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 시리즈의 최대 장점을 생각해서 시리즈로 소개했다.

이 시리즈는 치밀하다. 사쿠라미야 월드 내 모든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세 작품을 모두 읽고나면 흘러가듯 서술되었던 부분들이 사실은 배경 스토리가 모두 있는 것처럼 얽혀있다는 것에 감탄하게 된다. 속도감 있는 연출은 추리를 즐기기에는 정보와 템포의 조정이 잘 되어 있지 않지만, – 따라서 그 앞의 내용을 짐작하는 즐거움은 조금 덜하다. – 다큐멘터리를 찍듯이 사쿠라미야 월드의 사람들을 그려나간다. 주인공들인 대학병원 만년강사 다구치(리포터)와 후생노동성 조사관인 시라토리(해설가)라는 콤비는 여러 시선을 보여준다. 결말에 가서야 이 사람, 저 사람이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지고, 거대한 세상 속의 사람들을 유기적으로 파악하는 쾌감. 필자는 이 시리즈의 최대 매력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밀한 무대에서 펼쳐지는 지적 유희를 원한다면 이 시리즈는 매우 모자라다. 하지만, 대학병원이라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범죄, 수뢰, 조사, 조직운영 등의 사건과 그 속의 사람들을 파악하는 재미라면 매우 뛰어난 수작이다. 필자도 첫 작인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을 읽고 추리적 재미는 B급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사람은 다음에 어떻게 되어가나?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그들의 관계에 홀딱 반해서 이 시리즈들을 계속 읽었다.

– 적지 않은 나이(1961년생)이자 현역 의사인 작가의 경력을 보았을 때, 이 사쿠라미야 월드는 작가의 경험과 관찰력이 집대성된 재미있는 세계다. 러브 스토리의 단편도 하나 나와있는데, 이 시리즈에서의 러브 스토리를 생각해보면 매우 재미있을 듯 하다.

–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은 드라마,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드라마는 안 봐서 모르겠고, 영화는 원작에서는 40대의 후줄그레한 중년남성인 다구치 선생이 무려 꽃다운 처자, 거기에 다케우치 유코 캐스팅이다. -_-;;; 천박한 명품쟁이 시라토리가 아베 히로시가 맡으면서 너무 멋져져 버린 것도 같은 맥락. 원작 소설의 르뽀적 건조함이 순식간에 핑크빛 무드로 바뀌어버렸다. 흥행하려면 이해는 하지만, 원작의 현장적 즐거움이 반감된 것은 사실이다. + 제네럴 루주의 개선도 같은 배우들의 캐스팅으로 영화화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