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승과 변혁의 사이에서: 삼성과 롯데.

올해는 작년 프로야구 4강팀들 중 두 팀이나 감독을 교체했다. 그나마 로이스터 전임 감독과의 단년 계약을 통해서 교체가 예상되었던 롯데에 더해서, 5년 계약 첫해가 끝나고 훈련 직전에 전격적으로 감독을 경질한 삼성이 바로 그들이다.

이제 막 13경기를 했을 뿐이지만 별반 문제를 보이지 않는 삼성에 비해서 롯데는 (자신들이 A급 선수를 둘이나 데려온) 넥센에게도 뒤지는 7위, 3할대의 승률에 그치고 있다. 극초반의 순위야 별 문제가 안 되겠지만서도 이미 롯데 팬 사이에서는 양승호 감독에 대한 불만이 높다. 겨우내 준비했지만, 크게 바뀐 야수 수비위치와 투수 운용이 생각보다 원할하게 돌아가지 않는데다 타선조차 침묵하는 탓이다. 특히 불펜의 소모는 우려스럽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대호를 3루에 둘 수는 없고, 박기혁에게만 매달릴 수도 없었다. 탄탄한 선발진과 언젠가는 올라올 가공할 타선의 롯데가 약하다고 볼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양승호 감독의 롯데는 이제 막 시작일 뿐이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이와는 달리 선동렬 전임 감독과 거의 차이가 안 느껴질 정도로 비슷하게 팀을 이끌고 있다. 취임 당시 화끈한 공격야구를 펼치겠다 공언했고 현 삼성 타선에 그게 된단 말인가…라고 우려했지만 그건 모두 프런트에 대한 구라였음이 드러났다. 변화라면 안지만을 선발로 돌린 것 정도?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도 코칭 스탭조차 전임 감독이 전부 선임해놓은, 주어진 팀에 맞는 운영을 하는 점은 높이 평가받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삼성의 투수력은 정말 가공할만하다. 타선도 세대교체가 거의 끝나서 급하게 실험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들을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수비 코치 출신의 초보 감독은 능구렁이다.

모든 감독들이 취임 첫해, 첫달에는 실전 속에서 팀을 파악하고 통솔하는 데 시행착오를 겪는다. 특히나 초보 감독은 더한데다 두 감독 모두 겨울에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그런 면에서 두 감독의 평가는 올 시즌 막판에 가서야 가능할 듯 싶다. 양승호 감독은 급히 세운 대타라는 인식을 깨고 팀 리모델링을 성공적으로 마쳐 가을에 그 힘을 보여줄 것인가? 류중일 감독은 일단 전임 선동렬 감독의 큰 그림을 그대로 이어받았는데, 과연 투수들이 퍼지는 여름과 똑딱이 타선을 잘 관리해서 4강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인가. 두 신임 감독이 모두 초보, 그것도 강팀을 이끌고 있는 것만으로도 흥미있는 일인데 둘의 지향점, 전임 감독의 유산을 대하는 태도가 정반대다. 과연 그 결과가 어찌 나올지, 야구팬으로서 매우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홍어드립: 계승의 현장.

링크: 지역비하론으로 번지는 참 나쁜 야구 – 쿠키뉴스

일주일 남짓한 기간에 롯데 타자 홍성흔, 조성환이 거푸 KIA 투수 윤석민에게 공을 맞으면서 인터넷이 시끌시끌하다. 광분한 롯데 팬들의 공격에 이런저런 사람들이 편승하면서 문제가 커지는 모양새다. KIA팬인 내 입장에서는, 윤석민의 2개의 사구는 매우 유감스럽고 미안한 일이다. 고의적인 빈볼은 아니었으니 넓은 아량을 베풀어달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살짝 이 판에 꼽사리 끼어서 공격하는 LG팬도 봐줄 수 있다. 작년에 좀 많이 털어먹었고, 김상현이 터졌으니 그들의 짜증도 이해한다. 하지만, 야구를 넘어서는 전라도 공격에 대해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번 러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면, “지역차별에 관한 한 젊은이들이라고 다른 건 없다.”가 증명?되었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했다. 민주화는 끝났다, 지금은 좋은 시대다, 호남이 무슨 문제냐고. 민주화에 관한 이명박 대통령의 눈부신 업적에 그리 말하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다. 그리고 이번 사태로 호남이 이제 무슨 차별을 받는가, (우리) 젊은이들은 틀리다는 말도 쉽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 스펙트럼은 넓어서 디씨 스타일로 조롱하는 것부터, 전라도인들은 옛날부터 차별받을만 했다 + 차별을 자초했다, 빨갱이들이라는 고전 스타일까지 다양하다. 민주화 정권 10년간 이러한 이야기들은 수면 밑에서 잠복해있었다. 참여정부 때에도 지역차별은 금기에 가까웠다. 컨센서스가 만들어졌나  했더니, 젊은이들이 가볍게 지역차별을 꺼내들었다. 그리고서는 강변한다. “왜? 내가 싫다는데 뭐가 상관이셔? 근거도 있거든!”. 역시 젊은이들은 순진해서 정권의 힘?에 침묵했던 어른들이 내면으로, 사사롭게 전수시킨 그 시각을 조롱이라는 포장을 씌워서 분노할 건수가 생기자마자 자랑스럽게 써먹었다. 그리고 몇몇은 어른들을 침묵시켰던 그 힘?이 억압이고 압제였다고 당당히 외치기도 한다. 그렇다, 변한 건 없다.

그들의 근거는 감정적인 것이다. 하다못해 다른 지역사람들이랑은 잘 지내는데 전라도 사람들이랑 얽혀서, 뒷통수를 맞아서 손해본 경험이나 있을까? 그렇다면 일반화의 오류라고 지적이나 해주겠지만, 그런 글은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차별하는 입장에 섰다는 즐거움에, 힘이 있는 편이라는 즐거움을 한껏 느끼고 싶은 것처럼만 보인다. 그 젊은이들이라고 대로에서 “전라도 홍어새끼들은 다 탱크로 밀어버려야 돼.”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들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내면은 차별하던 부모들에 비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터넷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여기에 경제적 격차로 인한 빈곤 문제, 교육 수준의 문제, 농촌 국제 결혼으로 태어난 혼혈아들의 인종적 문제까지 번지기 시작한다면 그들의 근거! 또한 다양하게 그 레파토리를 늘려갈 것이다. 1960년대에 전라도 인구는 대한민국 인구의 30% 정도였다. 지금도 전라도계! 사람들의 비율도 그정도쯤 될 것이다. 이제 나타날 수많은 사회적 문제과 대립에 대해서 그들이 외칠 말은 하나다. “홍어잡종 빨갱이 새끼들이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들었다!”. 1930년대 유럽 최대 국가에서 자주 들렸던 외침과 비슷하다. 뇌가 부담스럽다는 성대한 범민족적 인증이 일어나던 그 나라 말이다.

말할 수 있는 힘은 대단한 것이다. 군사정권 때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몰아갔고, DJ가 정권을 잡자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담론이 시작되었고, 노무현 정부 때에는 지역감정 담론이 횡행했다. 알든 모르든 그 젊은이들은 영포회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의 사회흐름 속에서 속 편하게 홍어드립을 내뱉을 수 있었다. 정체성 인증한 그들이 민주당을 찍을까? 손학규든 추미애든 상관없이 홍어냄새가 난다며, 대다수는 한나라당을 소수는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을 찍을 것이다. 가벼운 조롱이라고? 그 함의는 전혀 가볍지 않다. 한국 정치와 사회의 기저에 흐르는 차별을 조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뿐이다. 똥에 샤넬 향수 붓고 명품이라고 부르는 꼴이다.

홍어드립치는 사람들, 전라도 차별주의자들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DJ가 동진정책을 아무리 추진했어도, 노무현이 목이 터져라 지역감정해소를 외쳤어도 그들은 조용히 엎드려 있으면서 조용히 은밀하게 아이들에게 그 시각을 계승시켰다. 그 꼴을 지금 우리들은 다시 보고 있다. 나는 지역차별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경부라인만이 아닌, 서울-서남해안, 동서 방향 물류를 활성화시켜서 전라도 인구를 늘리고 깊게 어울리는 것이 느리지만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너무 안일했다는 점을 배웠다. 물론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인종문제에 대해 그랬듯이 그 동안에는 법과 공권력을 통해서라도 혐오감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정치적 파워가 필요해지니 이번 기회에 나도 슨상님 광신도 인증이나 해 보자. 광신도가 그냥 되는건지 아냐? 그건 피눈물 짜내지면서 만들어지는 거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30대인 나는 이 꼴을 보고 있을 고향의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뭐라고 말해줘야 한단 말인가. 너네들도 딴 데 가서 눈물나게 당해봐야 진짜 전라도 사람이 되는 거야, 라는 개드립이나 쳐야 한다는 말인가.

계승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앞으로 대대손손 계속 싸워나가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다. 여전히 전라도는 대한민국에서 정의에 대해 물을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대일본제국과 나찌, 군사독재가 좋은지 싫은지 계속 사람들에게 확인해가면서, 정의를 물어가면서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고맙다, 개새끼들. 현실이 이렇다는 확실한 자료들을 마구 제공해줘서. 덕분에 실탄이 넉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