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역사는 반복되는가.

이번 애플 워치와 새 맥북을 보면 잡스가 쫓겨난 이후 맥 비즈니스에서 쇠퇴를 거듭하던 옛적 애플이 슬쩍 보인다. 당시 애플은 윈도95 이후 좁아지는 기술적 격차에 새로운 장르의 제품들을 선보이고 기존 제품(맥)의 고급화로 이윤폭을 지키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뉴튼, Duo처럼 재미있고 선구적인 제품들도 있었지만 실제 소비자들에게 그만한 가치를 제공했냐 하면 비관적일 수 밖에 없었다. 초기 호응이 좋았다하더라도 결국 꾸준한 추가 매출을 올리는데는 다 실패했었는데, 애플 워치와 포트가 사라진 새 맥북은 그 전철을 피할 수 있을까?

ARM의 Big.LITTLE: 삼성 엑시노스는 뜨거울 수 밖에 없다. #2/2

일단 제1편 ARM의 Big.LITTLE: 이게 무엇인가? 부터 읽고 보시는 쪽이 이해가 쉽습니다. 글이 굉장히 늦어졌는데, 삼성이 갤럭시 S4A, 노트3 등에 퀄컴 스냅드래곤 800을 주로 탑재하면서 이리저리 미루다가 기다리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리, 완성했습니다. 기대하라고 써 놓고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기다리신 분들에게 양해의 말씀 드립니다. ^^;

삼성은 처음부터 빅.리틀 프로세서를 동일 클럭 방식(Synchronous Clock Architecture, 이하 sync 구조)로 만들려고 했다. 이 문서에서 삼성은 코어별 클럭 방식(Asynchronous Clock Architecture, 이하 async 구조)에 비해 sync 구조가 성능은 물론이고, 전력 소모와 발열 면에서도 더 나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요약하면 다음 그래프와 같이, 코어를 고클럭으로 짧게 구동함으로서 async 구조가 갖는 여러 추가부담 없이 바로 전력 소모를 줄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Cap 2013-12-08 23-37-55-475
전력소모 = 전력소비율(Power) x 구동시간(Time) 이므로, 높은 클럭을 빠르게 구동한 후 코어를 꺼버리는 방법으로 sync 구조의 전력소모를 async 구조와 같은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는 삼성의 그래프.

또한 해당문서에서 삼성은 빅.리틀 아키텍쳐의 경쟁자로서 asynchronous architecture를 명시하면서 빅.리틀 자체를 sync 구조로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렇다면 코어별로 클럭을 통해 개별 변환되는, aync 구조가 필연적인 CPU별 변환(CPU Migration)은 최소한 삼성의 빅.리틀 프로세서에서는 불가능한 방식이었다. ARM 개발사들의 모임인 Linaro의 이 문서에서도 현행 하드웨어(삼성 엑시노스 5410)에서는 클러스터가 각각 sync 구조라서 IKS, 즉 CPU별 변환이 불가능하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CPU별 변환 개념이 사실상 MP모드 이후에 나온 절충적 개념이라서 생긴 문제로 보인다. MP모드는 이론상으로는 가장 완벽해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상당한 문제가 있는데, 이는 이 글 후반부에서 다루겠다.

클러스터 변환이 왜 문제인가? 이는 곧 왜 갤럭시S4는 온도 제한을 90도까지 올려서 발매해야 했는가?라는 문제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안드로이드 앱들이 대부분 싱글 스레드라는 점에 있다. 한 앱이 고성능을 요구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당연히 리틀 코어로는 성능이 부족하므로 빅 코어로 변환이 일어난다. 클러스터 변환이므로 리틀 코어들은 꺼지고, 빅 코어들이 모두 구동된다. 그리고 빅 코어 하나는 이 앱을 돌리기 위해서 클럭을 필요할 수준까지 계속 올라가야 한다. Sync 구조이기 때문에 나머지 빅 코어들 또한 할 일이 없음에도! 그 고클럭으로 동작해 버린다. 실 동작은 안 하므로 그나마 일하고 있는 코어보다는 낫겠지만, 클럭이 올리는 이상 전력 소모와 발열을 피할 수 없다. 멀티 스레드 앱이라면 그나마 빅 코어들이 분담하면서 클럭 상승이 억제되겠지만, 싱글 스레드는 그렇지 않다. 엑시노스 5410의 경우 한 클러스터가 4개 코어를 가지므로, 빅 코어 하나를 구동시키기 위해서 나머지 3개를 모두 같은 클럭으로 올려야 하는 낭비가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온도 제한을 낮춘다면, 엑시노스 5410은 다른 프로세서에 비해 훨씬 더 빨리 온도로 인한 클럭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갤럭시S4는 뜨거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잠깐, 그렇다면 할 일 없는 빅 코어들은 꺼버리면 되지 않을까? MP모드에서도 코어들을 모두 동작시킬 수는 없으므로 이 기능은 필요하지 않은가. 이는 결국 CPU hotplugging 문제가 되는데, 현재 리눅스에서 제대로 지원되고 있지는 않다.(참고) Linaro에서도 올해 8월에는 작업 중이었다고 한다. 리눅스에서도 개발 중이므로 실제 안드로이드에 적용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도 사용시간 벤치마크를 보면, 디스플레이와 GPU가 꺼지고 CPU와 모뎀만이 동작하는 통화시간에서 엑시노스 5410을 장착한 갤럭시 S4는 퀄컴 스냅드래곤 600을 장착한 버전에 비해 사용시간이 6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디스플레이가 켜지는 다른 작업들도 스냅드래곤 버전을 이기지는 못한다. 특히 비디오 재생에서는 1시간 정도까지 차이가 난다. 성능은 준수한 것으로 나오지만, 온도 제한이 강화된 S4에 대한 벤치마크는 찾을 수가 없었다.

멀티 스레드 안드로이드 앱들이 일반화된다면 상황은 많이 나아질 것이나, 멀티 스레드는 그 자체로 개발업무량을 몇 배로 증가시킨다. 더해 파편화가 심각한 안드로이드 시장에서 개발자/사가 저가형 기기에서는 오히려 성능이 떨어질 수도 있는 멀티 스레드화를 선호할 것이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CPU별 변환이 안 된다면, MP모드(삼성 표현으로는 Heterogeneous Mulit-Processing, 이후 HMP로 표기.)는 가능하지 않을까? 삼성은 올해 4분기에 고객들에게 HMP 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했었지만, 12월 중순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별다른 결과물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예상으로는 (빅.리틀 아키텍쳐를 계속 쓴다면) (가장 빠르게 잡아서) 갤럭시 S5에서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HMP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삼성이 붙인 이름대로 Heterogeneous해서, 즉 상이한 코어들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멀티 프로세서 OS들은 SMP(Symmetric Multi-Processing) 구조이다. 말 그대로 각 코어들이 모두 같고 동등하다는 가정 하에 (그래서 대칭적 Symmetric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개발된 것이다. 리눅스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Heterogeneous하게 만들려면 단순한 기능추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부터 완전히 새로 설계해야 한다. 현 리눅스 커널의 스케쥴러는 2003년 말 2.6 시절에 크게 바뀐 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보강, 개선되어 온 코드인데 이보다 더 복잡한 스케쥴러를 안정적으로 개발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우선도를 부여하는 정도로는 역부족이다. 거기에 덧붙여 아까 이야기했듯이 cpu hotplugging 또한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쓰지 않은 코어들을 끄지 못하는 HMP는 전력소모에서 결코 유리하지 못하다. 비유하자면, 땅은 평평하다고 생각하고 설계하고 지어왔던 집을 이번에는 언덕 위에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자면, 어떤 앱이 고성능을 요구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일단 돌려보고 CPU를 많이 잡아먹으면 빅 코어에 할당한다? 그럼 그 기간 동안 앱은 동작이 끊길 것이다. 구동 내내 별 성능요구가 없던 앱이 동영상 등을 재생하면서 갑자기 높아질 수도 있다. HW적으로 변환을 매끄럽게 만들어 낸 ARM은 대단하지만, SW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HW에서도 L2 캐시를 클러스터 별로 따로 쓰므로 상시 동기화에 들어가는 비용에 더해 용량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문제가 있다. L2캐시에 더해 Cache Coherent Interconnect까지 구현하려면 다이 크기 문제도 있고 수율에서 강점을 보이는 삼성만이 현재 빅.리틀을 채용한 이유가 있다. 매우 비싼 아키텍쳐인 것이다.

빅.리틀 구조에 대해 알아볼수록 SW, 특히 OS에 대한 이해가 적었던 두 개발사 -ARM과 삼성-이 SW 작업을 너무 가볍게 보고 진행한 아키텍쳐가 아닌가 싶다. 인텔도 IA64 아이태니엄 개발하면서 비슷한 실수를 했던 사례가 있다. 특히 서버 등을 노린 고성능 프로세서와 값싼 임베디드용 저전력 프로세서를 개발하면서, “이걸 한데 묶으면 굳이 새 거 안 만들어도 하이엔드 모바일 프로세서로 잘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똥찬 잔머리?를 굴렸던 ARM은 삼성이 결국 독자적인 아키텍쳐를 준비하기로 하는 등 그 대가를 호되게 치르고 있다. 삼성은 갤럭시 S4 이후 S4A, 노트 3에 이르기까지 (통신 모뎀의 이유도 있지만) 주력 하이엔드 제품들에 퀄컴 프로세서를 사다 써야 했다.

현재로서는 빅.리틀 프로세서 즉 엑시노스 옥타는 퀄컴 스냅 드래곤 등 async 구조의 프로세서에 비해 장점이 없다. HMP가 제대로 구현된다면 나름 장점이 생기겠지만, 그 SW는 여전히 개발단계에 머물러 있다. 안정화되려면 년 단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지금 엑시노스는 구입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결론은 하나입니다. 갤럭시 S4 사지 마세요, 굳이 갤럭시가 필요하면 S4A로 사세요.

 

애플 앱 스토어 사업자등록증 요구: 근거와 단상.

참고 링크

  1. 문제는 세금이야 , 이 바보야. – 6116
  2. 외국 개발자들의 경우 연락처 정보 추가 노출도 압박이 심할 듯… – being nice to me
  3. 구글 플레이의 한국 판매시 개인 정보의 요구 – Google Play
  4. 애플, 개인 개발자 사업자 등록 강제… 왜? – 이데일리
  5. 전자상거래등에서의 소비자보호를 위한 법률 – 국가법령정보센터
  6. Korea’s iTunes App Store gets personal, wants developers to show contact details – TECHINASIA
  7. 앱스토어 개발자 등록 해프닝, 원인은 ‘전자상거래법’ – Blotter.net
  8. 애플 앱 스토어 계약서 – Apple
  9. 구글 Play 법률정보 – Google

제2판 업데이트: 참고링크 7번의 기사를 먼저 읽어보시면 이해가 더 쉽습니다. 저도 초본에서 잘못한 부분들을 이 기사를 보고 바로 잡았습니다.

며칠 전부터 애플 앱 스토어에서, 앱 등록 시에 실명,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사업자등록번호(외국인은 예외)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참고1,2 )  구글 또한 플레이 스토어에서 한국 내 판매를 위해서는 개발자의 연락정보를 요구하고 있다.(참고3) 애플의 경우, 현재는 요구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 요구에 대해 앱 판매 수익에 대한 과세 문제로 접근한 기사(참고4)도 있기는 한데, 그 근거는 다른 곳에 있다. “전자상거래등에서의 소비자보호를 위한 법률” 제20조 제1항, 제2항과 그에 따르는 시행령 제25조 제1항이 그것이다. 즉 이번 제한은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률에 그 근거를 둔다. 참고4의 기사에서는 조세 관련 기관에게만 문의했는데, 이 법률을 집행하는 기관은 대부분 공정거래위원회이다. (이 글 초본에는 제10조로 논했었으나, 제10조는 사이버몰 운영자 자신에 대한 조항이다. 참고7을 보고 바로 잡는다. 참고7에서는 제20조 제2항만을 언급하였는데 실제 사업자 등록번호를 요구하는 법령은 시행령임.) (추가: 아직 공정위가 이 법령의 적용여부에 대해 확인했다는 소식은 찾지 못했음.)

법률 제20조(통신판매중개자의 고지 및 정보제공 등) ① 통신판매중개자는 자신이 통신판매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소비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총리령으로 정하는 방법으로 미리 고지하여야 한다.

② 통신판매업자인 통신판매중개자는 통신판매중개를 의뢰한 자(이하 “통신판매중개의뢰자”라 한다)가 사업자인 경우에는 그 성명(사업자가 법인인 경우에는 그 명칭과 대표자의 성명)·주소·전화번호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확인하여 청약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소비자에게 제공하여야 하고, 통신판매중개의뢰자가 사업자가 아닌 경우에는 그 성명·전화번호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확인하여 거래의 당사자들에게 상대방에 관한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여야 한다.

시행령 제25조(통신판매업자인 통신판매중개자의 정보제공) ① 법 제20조제2항에서 “성명(사업자가 법인인 경우에는 그 명칭과 대표자의 성명)·주소·전화번호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이란 법 제13조제1항 각 호의 사항(사업자가 법인이 아닌 경우 그 대표자의 성명을 갈음하여 사업자의 성명) 및 사업자등록번호를 말하고, 통신판매업자인 통신판매중개자가 다음 각 호의 정보를 보유한 경우에는 이를 포함한다.

1. 공인인증기관(「전자서명법」 제2조제10호에 따른 공인인증기관을 말한다. 이하 같다) 또는 신용정보회사(「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제5호에 따른 신용정보회사를 말한다. 이하 같다) 등을 통하여 확인한 신원정보

2. 해당 통신판매업자인 통신판매중개자가 제공하는 통신판매중개의뢰자의 신용도에 관한 정보

애플 앱 스토어와 구글 플레이가 이 법에서 규정한 “통신판매업자인 통신판매중개자”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들은 앱 판매자(이 법률 내에서는 “통신판매업자”로 규정된다.)의 관련 정보를 게시해야 될 의무가 있다. 왠 뜬금없는 법인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이 법률은 당초 “인터넷 쇼핑몰”을 규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즉, 옥션 등 오픈마켓을 생각하면 쉽다. 오픈 마켓에서 어떠한 물품을 사고 구매결정 등 결제를 했는데 결함 등의 사후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책임질 주체를 명확히 알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조항이다. 스마트 기기의 앱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자면, 피싱 등 범죄 앱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 소비자가 누구에게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분명하고도 공개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이다. (추가: 이 법에서 “사업자”란 제조-수입-판매 등을 하거나 용역을 제공하는 자를 지칭하는 용어(동법 제2조 6호 참조, 참고 5)이므로 사업자가 아닌 자는 해당 재화/용역의 제조-유통의 상행위 과정에 있지 아니한 자를 뜻한다. 중고 거래 등을 상정한 조항으로 보인다. 제2항 뒷부분에서 “거래의 당사자들”, (제공이 아닌) “열람”이라는 표현에서 그러한 점이 엿보인다.)

이 조항은 개인 개발자에게 문제이다. 기업의 경우에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어차피 사업자등록은 했을 것이며 그 영업주소는 법인의 경우 공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 개발 및 판매자는 전업이라면 세금 등 법적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는 것이 옳겠으나 자택 개발의 경우에 사업자 등록 번호만으로 충분할 터인데도 자신의 거주지 및 전화 번호까지 공개적으로 밝혀야 하는가,라는 사생활 보호의 문제가 있다. (이는 참고6에서처럼 외국인 개발/판매자의 경우에도 문제된다.) 그리고 겸업하는 경우 사업자등록으로 인한 겸업금지의무 또는 영리활동금지의무 위반이 발각되는 사태를 우려하는 이야기도 있다. 용돈벌이 등 소소한 취미로 개발하는 학생의 경우에도 자영업자로 규정되는 사업자 등록이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있었다. 대부분 개인들의 활발한 개발을 장려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렇다면 개인 개발/판매자들, 특히 전업이 아니라 겸업이나 취미로 하는 이들이 이 법의 적용을 피할 수 있을까. 검토해보면, 유료로 앱을 판매하는 경우에는 벗어나기가 매우 힘들다.  동법 제2조 제3호를 보면 다음과 같다.

3. “통신판매업자”란 통신판매를 업(業)으로 하는 자 또는 그와의 약정에 따라 통신판매업무를 수행하는 자를 말한다.

“업(業)으로 한다”는 표현은 해석상 정기적으로 일어나거나 꾸준히 행해지면 충분한 것으로, 이로 인해 생계를 유지하거나 이익을 보지 않아도 적용된다. 즉 앱 스토어에 앱을 등록하고 판매/서비스를 지속하고 있으며, 이에 더해 업데이트까지 이루어지고 있다면 실질적으로는 앱 판매로 이익을 보지 않고 있더라도 “통신판매업자”이다. 앱 판매는 애플이나 구글이 하는 것이고 개인 개발자가 직접 판매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겠으나, 애플, 구글 모두 자신들의 마켓 계약, 약관에서 제3자가 제작한 앱 판매 시에는 제작자와 구매자 사이에 판매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명확히 하고 있다. (참고8, 9 및 아래 인용 참조) 즉 판매자 맞다.

(애플의 계약서) iTunes는 귀하에게 Mac App Store 및 App Store를 통해 제공되는 소프트웨어 제품(총칭하여 “App Store 제품”)를 사용할 수 있는 라이센스를 귀하에게 판매하는 것입니다. App Store 제품으로는 다음과 같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i) Apple이 개발하여 iTunes가 귀하에게 라이센스해주는 상품들 (“Apple 제품”); 및 (ii) 제삼자인 개발자가 개발하여 귀하에게 라이센스해주는 상품들 (“제삼자 제품”). 특정 제품의 종류는 (즉, Apple 제품 또는 제삼자 제품 중 해당되는 것) Mac App Store 또는 App Store 신청서에 표시됩니다.
(… 중략 …)
귀하는 본 스토어를 통해 구매한 각각의 Apple 제품에 대한 라이센스가 귀하와 iTunes사이에 구속력이 있는 합의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귀하는 귀하가 제삼자 제품을 iTunes를 통해 취득한 경우, 해당 출판인과 직접적으로 귀하의 해당 제삼자 상품 사용에 대한 구속력 있는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라는 점; 및 iTunes는 해당 제삼자 제품에 대한 귀하와 출판인 사이의 라이센스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각 제삼자 제품의 출판인만이 그 제삼자 제품, 그 내용, 부인되지 않은 범위의 보장 및 귀하 또는 다른 당사자가 제삼자의 제품 사용과 관련하여 제기하는 청구에 대해 책임을 부담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구글의 약관) 2. Google Play 제공
직접, 대리인 및 앱 판매. 귀하가 Google Play에서본건 제품 (데이터 파일, 애플리케이션, 글로 된 텍스트, 모바일 기기 소프트웨어, 음악, 오디오 파일 또는 기타 음원, 사진, 동영상 또는 기타 이미지로 정의됨)을 구입할 때에는 아래와 같이 세 경로를 통해 구입하게 됩니다.
(… 중략 …)
(c) Android 앱의 경우 앱 제공자로부터 (“앱 판매”).
귀하는 본건 제품을 구입할 때마다 다음과 같이 별도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 중략 …)
(c) 앱 판매의 경우, 귀하가 구매한 본건 제품의 제공자와
이와 같은 별도 계약은 본건 서비스의 이용에 대하여 귀하가 Google Inc.와 체결한 계약에 추가적입니다.

무료 앱 개발자의 경우에도 이러한 면에서 앱 개발 및 제공을 “업”으로 하는 자는 맞다. 다만 무료인 경우에, 이를 “판매”로 볼 수 있는지가 애매하다. 판매는 매매(정확히는 매매계약 청약의 유인)인데, 매매의 핵심은 “유상계약” 즉 대가의 지급에 있다. 증여 등 무상계약 등으로 다룰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이고, 일단 “판매업자”로 분류하는 것은 무리이다. 다만 인 앱 결제 기능이나 광고 등으로 사실상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앱의 경우에 단순히 앱 스토어에서 앱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하여 이를 “판매”로 보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소비자 보호가 목적이므로 이러한 “무료제공인 수익성 앱” 또한 예외를 인정하기 힘들다.  세금은 인 앱 결제나 광고수익이 발생할 때에 준해서 징수하면 된다. 이는 앱 스토어의 문제라기보다는 결제 서비스 제공자나 광고수익 지급자와 관계가 있으므로, 앱 등록과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앱의 결함 또는 그로 인한 소비자의 부가적 피해를 책임질 공급자를 명확히 한다는 목적에서는 적용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판매는 매매의 청약 유인, 즉 “이거 사세요.”라는 뜻을 전달하는 행위이다. 무료제공 앱이라도, 설치 이후 사용 중에 매매(즉 구입)이 이루어진다면 무료 제공 자체를 판매 과정의 일부분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무료 앱을 설치하는 사용자 또한 소비자로 여길 만하다. 사실 이런 경우에는 앱 자체 내에 공급자의 정확한 정보를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이 더 직관적이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판매자, 소비자 지위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정확한 결정 또는 판결은 내가 아는 한 아직은 없다.

정리하자면, 해당 앱으로 수익을 내는 한에는 이 법률의 적용을 피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다만 수익요소가 없는, 단순한 무료배포 앱은 “판매”를 전제하는 이 법률이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법률 적용은 그렇다치면, 과연 오픈 마켓 등 “인터넷 쇼핑몰”을 염두에 둔 이 법률을 스마트 기기용 앱 마켓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즉 일반적인 인터넷 쇼핑몰, 오픈 마켓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이 법률의 규제가 앱 마켓에도 적합한가,는 이야기다. 오픈 마켓과 앱 마켓은 일단 몇십만원에 달하는 상품들이 자주 거래되는 오픈 마켓에 비해서 앱 마켓은 무료도 많고, 유료라고 해도 $5 이하가 대다수이다. 또한 피싱 등의 범죄를 제외하면 스마트 기기 앱 자체의 문제로 인해 소비자가 큰 피해를 입는 경우는 매우 적다. 또한 피싱, 스매싱 등 불법/범죄 앱은 공식적인 마켓에서 판매되는 경우보다는 별도의 설치 파일 형식으로 전파되는 경우가 많다.

이 둘 간의 가장 큰 차이라면 판매자의 국적 다양성이다. 옥션에서 해외 판매자가 한국인을 상대로 판매하는 경우는 배송, 결제, 통관 등의 문제로 인해 굉장히 적지만 앱 마켓에서는 매우 일반적이다. 이 법률 제10조는 사이버몰 운영자에게 자신의 “사업자등록번호”를 표시할 것을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구글 플레이를 운영하는 미국의 구글 본사에 등록번호가 있을 리가 없고 또한 표시되어 있지 않다. (상호명과 대표자명, 주소, 전화번호만이 나온다.) 구글이 이럴진대, 다른 해외 앱 개발자들이 사업자등록을 하기를 기대하기란 매우 힘들다. 하지만 “사업자”인 제작자이므로 시행령 제25조에 따라 사업자등록번호는 의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국내 제작자면서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은 경우 또한 마찬가지이다. 현재 국내 앱 마켓에서는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은 개인 개발자의 경우엔 사업자 등록번호를 제공하지 않고 서비스 중이다.(참고7의 후단 그림 참조) 사실 이는 전자상거래소비자보호법이 제작, 수입, 판매하는 이들(“사업자”)들은 당연히 사업자등록을 하였을 것이라 묵시적으로 전제하고 들어갔기에, 법에 틈이 생긴 셈이다.

또한 소비자와 사회적 이익을 생각해보자. 기업을 아닌 해외의 개인 개발자가 굳이 자신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를 공개할만큼 한국 시장이 매력적인가? 무료로 공개하는 앱들의 경우에는 더할 것이다. 해외 앱들이 한국 시장에서 이탈하면 한국 소비자들에게 불이익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5 정도의 피해를 구제받기 위해서 해외 사업자에게 연락을 취할 이익이 있을까 하는 점까지 생각해보면, 이들의 이탈에 비해 실질적인 이익을 기대하기는 매우 힘들다. 해외 공급자들에 대해 주소 등의 공개를 의무화함으로써 기대해볼만한 최대의 이익은 해외에서 만들어지는 피싱 등 불법 앱의 감소 정도일텐데, 이도 크지는 않을 것이 이미 피싱 범죄는 국제조직화 되어 있다. (최소한 해외의 사기 팀과 한국 내에서의 수금 팀 정도는 협력하고 있다.) 그들이 해외에서 만들어지는 피싱 앱을 솔직하게? 제작자를 밝히며 올릴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까? 거기에 앞에서 말했듯이 가장 위험한 피싱 앱들은 SMS등 다른 경로로 전파된다.

사업적인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면, 국내-해외 앱 마켓 간 평등권, 즉 차별 문제다. 국내 통신사 앱 마켓들에는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외국회사(애플,구글 등)에 대해서는 요구하지 못하면 이는 차별이다. 외국계 마켓에서는 외국제 앱과 국내 개인 개발자 앱을 쉽게 구할 수 있고, 국내 마켓에서는 사업자 등록을 한 전업 개발자들의 국산 앱 위주로만 구할 수 있다면 경쟁력 차이는 확연해질 것이다. 이러한 차별은 해당 통신사 투자자들의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도 크다. 현재 애플 앱 스토어는 다시 이 법률 상의 정보들을 요구하지 않고 있지만, 국내 앱 스토어들이 이미 표시하고 있다. 개인 개발자라면 어느 쪽에서 앱을 팔고 싶겠는가?

정책적으로 거래금액과 피해우려가 적은 앱 마켓에 대해 소비자 보호(및 세수확보)와 스마트 기기 앱 개발/공급자 활성화를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후자쪽이 더 무겁지 않나 생각된다. 국내에서 제작되는 피싱 앱들에게는 어느 정도 강력한 규제가 되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마켓을 통해 전파되지 않거나, 외국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큰 소용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전자 상거래 전반에 대한 소비자 보호를 소홀히 할 수는 없으므로, $10 정도의 소액인 SW, 컨텐츠 거래에 대해서는 제작/공급자의 신원 정보들의 제공 의무를 면제하며 일정 액수 이상의 판매액을 올린 이들에 대해서만 마켓 운영자가 세무당국에 통보하도록 하고, 범죄 앱들의 경우에는 사후 차단 및 별도의 제작자 추적 제도를 도입하는 예외를 두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이라고 생각된다.

글이 길어졌다. 세 줄(이지만 역시 좀 긴) 요약.

  1. 현행 전자상거래 소비자보호 법률상 앱 공급자의 이름,주소,전화번호,사업자등록번호 제공 의무는 완전한 무료 앱을 제외하면 피하기 힘들다.
  2. 가격의 소액성, 외국인 앱 개발/공급자의 대거 이탈, 국내-해외 앱 마켓간의 평등, 피싱 앱의 해외 개발 및 허위공개를 고려하면 소비자보호를 위한 공개의무는 현실적이지 않다.
  3. 소액의 SW, 컨텐츠 거래에 있어서는 소비자보호보다는 개발, 공급을 장려하고 국제성을 중시하는 예외 규정이 현실적으로 필요해 보인다.

 

에바Q 1회차 감상후기

일단 네타바레가 난무하는 글입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이라면 포스터 밑으로는 읽지 말길 권해드립니다.

– 하나만 하자면, 아, 슬프다. 정품의 운명이여… 어쩌다 야바위꾼을 만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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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헌법재판소 낙태죄 합헌 결정에 대한 간단한 해설문.

링크: 헌법재판소의 결정 요약문(2010헌바420)

주의: 이번 글은 쉽게 쓰기 위해서 법적 형식논리는 상당부분 일부러 빼 놓고 썼습니다. 위 링크의 원문이 훌륭하게 요약되어져 있으므로 그 부분은 원글을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 끝에는 네줄요약을 해 놨으므로 시간이 없으신 분이라면 그 쪽부터 읽으면 되겠습니다.

이번 헌법소원소송에서 다룬 조항은 두 개입니다. 일단 사건에서 문제된 조산사의 낙태를 무조건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 제1항입니다. 그런데 이 조항은 형법상 자기낙태죄(제269조 제1항)이 위헌으로 무효라면 당연히 무효가 되므로, 자기낙태죄도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서 위헌 여부를 다루었습니다. 즉 임부 자신이 낙태하는 게 범죄가 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걸 도와준 이도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요. 이들 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형법(1995. 12. 29. 법률 제5057호로 개정된 것)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①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형법(1995. 12. 29. 법률 제5057호로 개정된 것) 제269조(낙태) ①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번 결정(판례)에서 가장 첨예하게 맞선 부분이 바로 이 자기낙태죄, 임부가 스스로 낙태하는 행위를 범죄로 볼 것이냐 말 것이냐는 부분입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이 문제는 두 개의 권리가 충돌합니다. 이번 결정에서도 마찬가지로 태아의 생명권과 임부의 자기결정권입니다. 풀어 말하면 임부 자신이 낳기 싫겠다고 하여 태아를 죽이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아닌가 입니다. 일단 사람 하나가 자기가 싫다고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절대 허용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태아를 어디까지 보호받을 인간으로 볼 것인가? 라는 문제가 됩니다. 일단 두 입장이 대립합니다.

(합헌의견) 태아가 비록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모(母)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모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되어야 한다. 헌법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으로 될 예정인 생명체라는 이유 때문이지, 그것이 독립하여 생존할 능력이 있다거나 사고능력, 자아인식 등 정신적 능력이 있는 생명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러므로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그에 대한 낙태 허용의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인용자 주: 하지만 수정란이 경우에는 착상여부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생명권, 즉 인간여부를 부정합니다.)

요약: 잘만 크면 사람이 될 건데, 그런 아이인 생명체를 죽이자고?

(위헌의견) 현대 의학의 수준에서는 태아가 임신 24주에 이르기까지는 자존적 생존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고 있으므로, 태아의 독자적 생존능력이 인정되는 임신 24주 이후에는 태아의 생명도 인간의 생명과 어느 정도 동일시할 수 있으므로 임부의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임부의 생명이나 건강에 현저한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등 특단의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함이 바람직하다. (중략) 의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임신 초기(임신 1주-12주)의 태아는 사고나 자아인식, 정신적 능력과 같은 의식적 경험에 필요한 신경생리학적 구조나 기능들은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바, 임신 초기의 태아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반면 (후략)

요약: 엄마의 일부로만 붙어있는 의식, 정신능력도 없는 세포덩어리를 사람으로 볼 순 없지.

합헌의견은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한 순간부터 생명권의 보호대상, 즉 인간으로 취급하자는 데 반해 위헌의견은 독자적 생존능력을 기준으로 임신 24주 이상이 되어야 인간으로 보자는 의견입니다. 다만 위헌의견은 임신 12주 이상부터는 태아가 고통을 느낄 수 있고 낙태로 임부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으니 임신 12주 이내에만 낙태를 기본적으로 허용하자는 입장입니다. 즉 헌재의 어느 의견을 따르더라도 임신 중기(임신12주~23주) 이후부터는 낙태가 원칙적으로 금지됩니다. 헌재의 의견대립은 임신 초기(~임신12주)의 낙태를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입니다. 낙태의 전면적 자유화는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대립점은 자기낙태죄가 낙태를 막는데 효과적인가 하는 점입니다. 현재 모자보건법은 몇몇 이유(임부의 건강에 치명적 영향, 근친상간, 강간등)가 있을 경우 임신 24주 이내에 한하여 의사가 낙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유에 대한 판단을 의사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해서 실상은 산부인과의 가장 큰 일거리가 낙태시술이 된 것이 현실입니다. 의사도 돈 벌어야 하는데 자기 혼자만 하면 되는 싸인 안 하기가 쉽지 않겠죠. 위헌의견은 자기낙태죄가 사실상 효력이 사라졌으니 돌팔이 낙태꾼들에 의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태아가 사람도 아니고 임부의 건강과 생명에도 영향이 적은 임신 초기(~임신 12주) 이내의 의사가 안전하게 시술하는 낙태를 허용하는 편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임부의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논리를 폅니다.

(위헌의견) 형법상 낙태죄 규정이 현재는 거의 사문화되어 낙태의 근절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중략) 임신 초기의 낙태는 시술방법이 간단하여 낙태로 인한 합병증 및 모성사망률이 현저히 낮아지므로, 임신 초기에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낙태를 허용해 줄 여지가 크다. 불법낙태로 임부의 건강이나 생명에 위험이 초래되는 사태가 빈발하고 있어 그 대책이 시급한 현실에 비추어 보면, 적어도 임신 초기에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낙태를 허용해 줄 필요성이 있다.

요약: 어차피 처벌해도 이리저리 다들 야매로까지 한다니깐? 그럴 바에는 안전한 한도에서 하고 싶다는 대로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지.

이에 대해서 합헌 의견은 낙태를 처벌하는 것 외에 피임 등 성교육이나 보육 지원만으로는 낙태를 줄이는데 충분하지 않고, 임신 초기의 낙태를 자유롭게 허용할 경우 사회적 경제적 이유, 즉 부끄럽거나 키우기 힘들다는 이유로 낙태가 더욱 만연할 것을 우려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아직까지 자기낙태죄가 효력이 있다는 입장입니다.

(합헌의견) 성교육과 피임법의 보편적 상용, 임부에 대한 지원 등은 원하지 않는 임신을 미연에 방지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불법적인 낙태를 방지할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중략)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태아의 생명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것에서 더 나아가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로까지 그 허용의 사유를 넓힌다면, 자칫 자기낙태죄 조항은 거의 사문화되고 낙태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인간생명에 대한 경시풍조가 확산될 우려마저 없지 않다.

요약: 그래도 다른 방법들이 안 통하잖아. 그리고 결국 돈 없거나 부끄럽다고 사람 죽이는 걸 방치하자는 거냐? 하고 싶다고 해도 그렇게는 못해주겠다.

위헌의견은 자기낙태죄 전체가 위헌이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기 힘들고 임부 건강과 생명에는 별 지장이 없는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금지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입장입니다. 합헌의견은 어차피 지금 법률들로도 의학적, 윤리적으로 불가피한 낙태는 할 수 있는데 그 이상으로 낙태를 허용하면 결국은 부끄럽고 키우기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태아를 낙태하자는 것이니 거기까지는 허용할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결국 태아를 사람처럼 생명을 보호할 것인가,와 부끄럽거나 키우기 힘들다고 하는 낙태를 인정할 것인가가 대립점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헌재의 이번 결정은 가부장적인 문제와는 거리가 멉니다. 헌재는 임부가 기혼인지 미혼인지, 미성년자인지 성년인지는 전혀 다루지 않았습니다. 가부장적 권리에 대한 논의 또한 없었지요. 태아를 사람과 비슷하게 생명권을 보호받아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 곧 가부장적이라 보기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또한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인한 낙태 또한 반대할 근거가 있는 것이, 현행 형법은 갓 태어난 영아를 치욕을 은폐하거나 양육하기 힘들다고 하여 즉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살해하는 부모등을 명시적으로 처벌하고 있습니다. (형법 제251조, 영아살해죄) 결국 갓 낳은 핏덩이와 태아를 다르게 본다면 위헌, 비슷하게 본다면 합헌으로 가기가 쉽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현실적으로 임신 12주 이내의 낙태에 대해서는 자격을 갖춘 의사가 시술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허용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의학적, 윤리적 사유들과 사회적 경제적 사유들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것인가요? 구체적으로 미성년자가 임신한 경우에 있어서 몇 살까지는 의학적으로 위험하고 그 이후는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육체적 생리적 성숙도는 개인차가 굉장히 큽니다. 또한 강간과 의도치 않은 원나이트는 어디까지가 강간이고 어디까지가 원나이트인가요? 이는 사실 확실한 폭력의 입증이 없는 한에는 여성 자신의 진술에 의존하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이러한 경계는 매우 모호해서 현실적으로 한쪽만 허용하고 다른 쪽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힘듭니다. 그 결과가 결국 합법적으로 탈을 쓴 사회적 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가 만연하는 현실입니다. 영아살해죄에 대해서는 낙태를 하지 않았으므로 분만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낙태 합법화를 전제로 하면 피해갈 수는 있습니다. 즉 모든 낙태를 금지하지 못한다면 안전을 조건으로, 임신 초기의 낙태는 허용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오히려 가부장적인 문제는 낙태를 허용했을 때 크게 불거집니다. 결혼한 상태인 임부의 경우, 낙태에 남편의 동의가 필요할까요? 또는 최소한 남편은 부인이 낙태를 한다는/했다는 것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어야 할까요? 이혼 시에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낙태 경험이 위자료 산정에 고려되어야 할까요, 아닐까요.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부모 등의 친권자가 낙태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는 미성년인 임부는 낳고 싶어하는데 친권자는 낙태를 원하는 상황이 일반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가부장적인 문제 뿐만이 아닙니다. 프라이버시권(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도 걸립니다. 각종 의료보험 가입시 낙태 경험 여부는 보험사에 고지해야 하는 정보일까요? 다시 아이를 임신하여 낳고 싶을 때 낙태 경험을 산부인과 의사에게 알려야 할까요? 지금까지는 불법으로 인해서 낙태에 대한 정보는 아예 없는 셈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만, 낙태를 합법화하는 순간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여성 인권에 대한 논의를 한다면 이러한 부분도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산사가 문제삼은 형법 제270조 제1항은 낙태금지를 전제한다면 의료지식이 있는 자가 낙태를 도운 것이므로 더 큰 처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는 헌재에 이견이 없었습니다.

짧게 쓰려고 했는데 상당히 길어졌습니다. 네 줄 요약 넣겠습니다.

  1. 태아를 언제부터 사람과 비슷하게 보호할 것인지는 그 근거를 “사람이 될 가능성”이냐, “생리적 정신적 독립성”이냐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갈립니다.
  2. 사회적 경제적 사유 즉 부끄럽거나 키울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낙태를 허용할 것이냐. 이는 결국 1.의 입장에 따라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느냐, 와 임부의 권리 아니냐로 의견이 갈립니다.
  3. 이 두 의견들 모두 임신 12주 이후의 낙태는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위헌의견에서는 임부의 생명과 건강을 그 주된 이유로 듭니다.
  4. 임신 초기 낙태를 합법화한다면 그 진료기록에 대한 보존, 공개, 고지 여부는 여러모로 굉장한 문제가 됩니다.

강준만이 쓴 “안철수의 힘” 독후감.

이 책은 두 권으로 나와야 했다. 머릿말과 맺는말은 빼고 본문이 모두 15장인데 이중 초반 8장은 안철수 비판론자들에 대한 답변이고, 나머지 7장은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들에 대한 비판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초반 8장은 안철수가 쓴 “안철수의 생각”의 별책부록으로 붙었어야 했고 후반 7장은 민주통합당 비판서로서 따로 나와야 하지 않았나 싶다.

강준만 교수(이하 직함 생략)의 고민이 이 상이한 두 부분을 한 권으로 묶은 데서 잘 드러난다. “안철수의 힘”이 제목인데 이는 “민주통합당 경선후보들에 대해 상대적인, 그리고 비판들을 이겨내는 안철수의 힘”로 풀어쓸 수 있다. 안철수 자신이 아니라 그의 힘이다. 정확히 말하면 안철수의 지지율, 즉 안철수 현상에 대한 분석인데 문제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지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거기서 민주통합당과 그 경선후보들에 대한 비판이 시작된다. 안철수가 지지 못할 정도로 흠결있는, 비판받는대로의 인물이 아니다. 현재의 높은 지지율에 타격을 줄만한 공격이 아니라고 말하고나서 그 경쟁자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 구조는 결국 강준만이 안철수를 지지하는 이유가 소거법임을 뜻한다.

초반 8장은 안철수가 아닌, 안철수에 대한 비판자들에 대한 글이다. 소거법이라면 일단 민주통합당 예비후보들의 결격사유를 거론하여 탈락시킨 다음에, 안철수에 대한 비판에 대응하는 순서로 쓰는 편이 논리적이다. 하지만 강준만은 일단 안철수에 대한 비판을 방어하는 글들을 먼저 배치해서 안철수에 대한 책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덕분에 첫 페이지부터 대량의 안철수 비판론들을 접해야 해서 읽기가 매우 힘들어졌다. 머릿말에서 안철수 현상에 대한 관심이 있을 뿐이며 그를 하나의 도구로서 이용하고자 한다는 강준만의 멘트가 없었다면 거대한 답문집 정도로 여길 수 밖에 없는 구성이다.  이는 책의 주제를 독자들의 시선을 안철수로 집중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또한 사실상 결과론에 가까운 지지이유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강준만을 본받아 우선 내 입장을 밝히자면, 나는 안철수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가 유일하게 이론적으로나마 인정한 비판(42페이지)인 정당정치를 중시하는 최장집류의 입장이며 이에 더해 대규모 기부로 민심과 관심을 사는 금권정치적 행태 때문에 대선후보로서 부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강준만은 이에 대해 현실적으로 현재 한국에서 정당정치가 제대로 기능하기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인가 하고 묻는다. 그리고 그 정당정치가 되돌리기 힘들 정도로 어그러진 치명적 순간으로 열린우리당 분당을 꼽는다. 이는 그의 말이 옳다. 후반부의 민주통합당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생각하면 더욱 암울한 상황이다. 정당에서 훈련과 경험을 쌓아 정치적 능력과 지지를 키워나가는 코스는 밟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다른 민통당 경선 후보들에게도 동일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나마 손학규, 김두관은 지자체장을 맡아 경험이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중에서 왜 안철수인가?

지지율 때문이라는 강준만의 입장은 확고하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정치판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가진 이가 지지를 받고 있는데, 이를 기존 정치판의 문법으로 해석해서도 곤란하고 틀리다는 이유로 매도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고 말한다. 불통에 대해서는 박근혜까지 끌어들인다. 어느 정도는, 아니 매우 결과론적인 입장이다. 지지 즉 힘이 있으니 시대의 의지라고 한다. 디지털 문명을 거론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체화로서 안철수의 지난 행적과 발언들을 이야기하지만, 핵심을 정리하자면 바로 지지율 뿐이다. 여기서 강준만은 이미 현실 정치가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신의 견해를 강하게 드러낸다. 어차피 기존 정치인들이 불신받고 능력도 없다면 어째서 현재 지지받는 아이콘을 부정할 필요가 있는가, 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겠는가? 어차피 민주통합당과의 연립정권이며 최악의 경우라도 관료들이 받쳐줄 것이다. 이러면서 강준만은 자신의 희망을 다음과 같은 말로 압축한다. “나는 우리 국민을 믿는다.” 물론 나 또한 안철수에 대한 대부분의 비판들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최장집류가 아니라면 피로증후군 관련 비판 정도만 경청할 가치가 있고 나머지는 들을 가치가 없지만, 그에 대항하는 근거가 지지율이 높고 말하는 이상이 높다는 이유만이어서는 안 된다.

이 결과론적인 근거가 통하려면 기존 정치판에, 정확히 말하자면 민주통합당에,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친노에게  더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바로 후반 7장의 시작이다. 가장 최근의 민주통합당 4.11 총선 패배로부터 그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나꼼수, SNS에 대한 분석이 이어진다. 이 내용들은 틀린 것이 없다. 논할 것도 없다. 그냥 읽으시면 된다. 이념이라 부를 수 없는 진영논리에 갖혀 있는, 행동하는 친노 강경파들에 의해서 어떻게 민주당 내부와 그 지지층이 망가졌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잘 분석한 글은 찾기 힘들다. 또한 멘토는 멘티들이 소비하는 아바타일 뿐이라는 SNS에 대한 비판 또한 탁견이다. 나는 수도권 빈민층의 분리, 폐쇄화가 이 현상들의 원인이라고 보지만, 이 주제는 나중에 다른 글로 다루려 한다. 어쨌든 민주통합당이 직면한 중도지지층의 이탈 – 이는 박근혜도 마찬가지로서 이들은 많은 경우 안철수를 지지한다. – 이 최대의 문제이며 그 원인이 친노의 과격화에 있다는 분석은 옳다. 과격파들의 지원을 받은 이해찬이 당대표경선에서 승리하면서 민주통합당은 20%대 지지율을 넘어설 동력을 상실했다.

강준만은 증오의 정치에 매우 큰 우려를 보인다. 특히 이명박과 MB라는 두 단어 사이의 간격을 내보이면서 극단적인 이명박 공격에 나서는 과격파를 걱정한다. 이들은 당내외에서의 활동력으로 민심을 왜곡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중도층까지 격렬하게 공격함으로서 중도지지층의 이탈에도 커다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을 포함해서, 중도층을 경멸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고 설득할 수 있는 비전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친노 과격파를 포함하여, 이러한 증오시대에 종언을 고하는 것이 시대정신이 될 것이라 말한다. 내 의견이지만 친노의 과격화는 대부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에 책임이 있다. 해결하기가 매우 난망한,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강준만이건만 그는 이 지점까지는 적지 않고 민주통합당 바깥에서 안철수를 지지하는 것으로 그 증오시대를 끝내고자 한다.

이러한 강경파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문재인이다. 이 책에서 영남 후보론에 대한 비판 바로 다음에 문재인이 나오는데, 당연한 순서다. 결국 노무현 어게인을 외치는 이들을 비판하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역주의 완화정책이 헛다리 짚었다는 것을 지적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중앙 집중과 이로 인한 한국 지역들의 부족화인데 정치적 구조조정만을 통해서는 이의 해결이 불가능하다. 또 하나는 친노 강경파들에 대한 호남의 인식 변화다. 특히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던 전북에서조차 친노에 대한 반감이 높다는 것은 강준만도 지적했지만, 같은 지역 출신인 나 또한 잘 느끼고 있는 일이다. 문재인 개인에 대한 비판도 상당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나꼼수, 미권스 등의 친노 강경파인 이상 호남에서 지지를 얻기란 힘들다. 일단은 여론주도층에서만 흐르는 이 기류가 여론조사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흐름이 언젠가 확산될 것은 확실하다. 괜히 호남에서 투표율이 곤두박질치고 박근혜 지지율이 생각보다 높게 나오는게 아니다. 더 나아가 강준만은 호남인들에게 중앙에서의 집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지말고 체제변혁에 나서야 한다는 호소까지 한다. 온라인 극우파들이 호남을 모멸하는 발언을 잇는 것도 호남이 중앙권력에 참여보려고 저자세를 보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곁들인다. 그렇다. 호남이 지지하는 (그러나 배신당했던) 영남후보론의 폐기다. 호남과 중도층의 지지를 모두 잃으면서 어떻게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가?

손학규에 대해서는 매우 높이 평가한다. 다만 그는 친노 과격파의 지지를 받기 어려워서, 현 민주통합당 내부 경선 통과가 불확실하다고 본다. 강준만의 분석이 옳다. 손학규는 정동영만큼 성큼성큼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더 충실하게 준비를 해 왔는데, 영남후보론과 친노 강경파 때문에 당내에서조차 주목받기가 힘든 처지다. 분당 보선에서도 승리했고, 본선 경쟁력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고 나는 보지만, 당내 경선이 먼저다. 김두관은 룰라론에서 높게 평가되지만 무소속이었던데다가 LH공사를 둘러싼 전북과 경남의 충돌에서 (경남지사로서 당연한 일이었지만) 경남에게 완벽한 승리를 안겨줘서 대선후보로서는 힘들지 않은가라고 보았다. 딱히 뭐라 평가할 여지는 없다. 그리고 간략히 지난 대선의 BBK를 답습해 박근혜에 대한 네거티브에만 매달리려는 민주통합당에 대한 비판으로 후반을 마무리한다.

어째서 결과론에 가까운 높은 지지율의 후보를 지지하는가. 강준만은 맺음말에서 그 이유를 밝힌다. 비상한 상황, 민중의 불만이 임계점을 넘어 언제 홍수처럼 세상을 쓸어버릴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대중의 기대와 지지를 받고 있는 지도자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07년에 나서지 않았던 이유로도 읽힌다. 현 대한민국의 정치가 그 기능을 상실했으며 강준만은 실제 혁명이란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를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한민국 체제 변혁이 시급하며, 이를 이끌 수 있는 지도자에게 필요한 힘을 안철수는 가지고 있다. 그를 이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신뢰를 가지고 국민을 믿자는 말로 나에게는 읽혔다. 그리고 그는 “우리 모두의 것”이라며 강준만은 책을 끝낸다.

나에게 가장 걸렸던 점은, 그러한 변혁의 기대를 한 인물에게 인격화personalization시켜야 하나? 라는 점이다. 그는 어떠한 조직도 체계도 갖추지 못한 한 개인일 뿐이다. 이게 노무현 때문,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라는 비판과 증오도 이러한 인격화의 한 단면이다. 이러한 증오를 이겨내자면서 중도적 성향을 보인다는 이유로 다시 한번 한 개인에게 집중하자는 것은, 강준만이 지적한 노무현의 지역주의 해결책처럼 구조적인 실패를 반복할 것이다. 강준만도 인정하듯이 안철수는 예외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인격화 문제의 예외는 아니다.

안철수의 힘을 도구로서 이용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본다. 안철수를 믿고 그의 힘을 빌려쓰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한 개인에게 정치적인 힘을 집중시키는 것은 이나마 이뤄놓은 절차적 민주주의 시스템을 다시 해체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침묵이 높이 평가되고 단지 이미지로만 인기를 얻는 이 인격화가 극단으로 가면 결국 파시즘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새 시대의 총아이자 공동체가 체화된 인물에게 모든 권력을 몰아주는 것이 파시즘이고, 이러한 한 개인에게 너무 큰 의미와 기대를 거는 것이 파시즘의 시작이었다. 안철수 개인의 호불호는 제쳐두고 인격화 자체가 우려스럽다.

강준만이 이러한 내 걱정들을 몰랐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승리하기 위한 길을 택해야 한다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더이상 망가지기 전에, 홍수가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 전에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것이 아무리 위험한 것일지라도 택해야 한다는 점에서 강준만의 의지를 보았다. 그는 강하고 결연한 메시지를 전한다. 나는 아마도 대선 투표일 바로 전날까지도, 어쩌면 당일까지도 이 책을 옆에 두고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나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그 전에 민주통합당 후보경선에 참여하여 손학규에게 한 표를 던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민족의 근대화에 대한 단상.

– 예전에 써놓고 공개하지 않았던 글인데, 그 때는 더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괜찮겠다 싶어서 공개합니다.

조선-한국의 근대화 논의를 보면서, 나는 혜초 선사와 소중화(小中華)를 떠올린다. 우리나라 제헌사(헌법 제정 역사)를 보면 독일에서 법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줄줄이 나온다. 이승만이 (말그대로) 깽판을 쳐서 그렇지, 제헌 헌법 초안들은 후일 독일 기본법(독일헌법의 정식명칭)보다 나은 부분이 있을 정도로 매우 뛰어난 부분들이 많았다. 이는 일본이 패전후 메이지 헌법을 국민주권주의에 입각하도록 바꾸질 못해서 맥아더 휘하 극동사령부가 사실상 현행 일본 헌법을 작성했던 것과 크게 비교된다. 학문적 깊이야 일본에 비할 수준이 아니었겠지만, 최소한 조선인들은 현대적 헌법을 스스로 (독일 이론을 베껴오던 어쨌든 간에) 작성할 정도의 역량은 가지고 있었다. 신라의 혜초 선사는 천축에 가서 불법을 배웠고, 조선은 소중화를 외칠 정도로 유학을 번성시켰다. 그러한 전통 속에서 한국은 독일에서 직접 법학을 배워온 학자들이 독일이론에 입각해 헌법을 작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한국인들은 지주-자산가 계급일수록 유학 보내기에 열을 올렸는데, 유교적 전통이 파괴된 식민지 조선에서 그 대상은 일본을 통한 서양 문명이었다. 광복 후 이는 미국으로 강력히 집중된다. 구 일본제국은 한반도에 이런저런 인프라를 지었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관동군으로부터 인적, 정신적으로 승계된 군사국가주의문화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다. 박정희는 식민지 조선을 만주국 스타일의 공업군사국가로 개조해갔다. 그렇다 할지라도 한국은 광복부터 지금까지 小美國을 지향하는 국가로 존재하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거의 모든 인프라가 파괴되었어도 인재와 지식은 남아있었고, 능력이 되는 이들은 미국으로 수도 없이 유학을 떠나고 문물들을 들여왔다. 다녀오지 못하는 이들은 군수지원이든 기독교 선교사들이든 쓸 수 있는 연줄은 모두 동원해서 미국을 배우고 따라하는데 열중했다. 결국 한국의 현대사는 만주국을 지향하는 관동군 문화와 소미국을 지향하는 민간인 문화의 격렬한 충돌사라고 볼 수 있겠다.

미 연방정부 디폴트: 이념전쟁 #1/2

  1. 링크: 오바마-베이너 협상 결렬, 美 ‘디폴트’ 위협 현실화? – 프레시안
  2. 링크: 美초선의원 “오바마 디폴트 위기 ‘거짓말'” 주장 – 연합뉴스
  3. 링크: 사공 많은 美공화당 “도대체 누가 대표냐” – 연합뉴스

미 연방정부 부채한도 상향을 위한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뉴스다. 미 연방정부의 부채는 미 의회가 정해놓은 최대 한도를 넘을 수 없게 되어 있다. 부채가 그에 달할 정도로 증가해서, 그 한도를 상향시키기 위한 민주당+행정부(대통령)과 공화당간의 협상인 것이다. 만약 부채 한도가 늘어나지 않으면 미 정부는 돌려막기가 불가능해지면서 채무 불이행, 즉 디폴트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얼핏 보면 부채 한도 증가와 정부 지출 축소는 합의에 별반 문제가 없고, 증세에 관련해서만 이견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디폴트가 거론되는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티파티(Tea Party)다. 리버테리언(libertarian) 모임인 이들은 정부지출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고 믿는다. 국방과 치안, 즉 공안만이 정부가 할 일이다. 그들의 생각은 링크 2번의 초선의원의 말에 잘 드러나있다. 세수입이 국채 이자를 지불하는데 충분한데 왜 부채를 더 늘려야 하나? 정부가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이념이다. 미 연방정부가 디폴트를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은 그들에게는 굉장한 호재다. 누가 대통령이든간에 부채 한도와 감세만 틀어쥐면 정부는 많은 작업, 그들이 볼 때는 불필요한 개입을 줄일 수 밖에 없다. 티파티계 의원들은 증세금지에 대한 유권자 공약을 이유로 들지만, 지출축소에 더해 감세까지 지속함으로서 정부지출을 크게 줄이자는 게 핵심이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신이 추진하는 거의 모든 정책의 중지를 요구하는거나 다름없으니 디폴트가 나서 대통령 자리가 날아가더라도 포기할 수가 없다. 허수아비 대통령이 무슨 소용인가.

티파티들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미 하원에서 공화당이 승리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다음 대선에서도 캐스팅 보트를 쥘 가능성이 높다. 공화당 정치인이라면 그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맥케인 등 기존 보수주의자 입장에서는 연방정부가 디폴트에 처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티파티에게는 자신들의 이념을 항구화시킬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일 수도 있다. 그 결과가 링크 3번의 기사가 보여주는 공화당의 지리멸렬함이다. 그리고 이제는 기술적으로 대통령에게 긴급권한을 주고 그 다음 의회가 정식으로 한도를 올리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는데, 공화당이 하원에서 통과시킨 법안은 민주당이 우세한 상원에서 부결되었다. 하지만 공화당이 티파티의 의견을 억누르고 다른 타협책을 찾기란 어려워 보인다.

민주당과 티파티. 어느 쪽이든 지는 쪽이 자신의 정책이념을 완전히 버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공화당은 그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일단 기술적으로는 디폴트 불사를 외치는 티파티 쪽이 훨씬 유리한 상황이다. 디폴트가 나서 연방정부 지출이 완전정지되면 그들이 원하는 상황으로 이끌기 매우 쉬워질테니까. 수많은 부분에서 공공성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회복하려는 민주당 또한 전전 정부때부터의 정책방향을 간단히 포기할 수는 없다.

나는 결국 미 연방정부가 단기적일지라도 디폴트를 맞게 될 거라고 본다. 이 협상은 사실상 종교에 가까운 이념과 가치관의 전쟁이며, 쌍방 모두 치명적인 정체성을 놓고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말이 맞다. 이 디폴트가 오바마의 대통령직을 날려버리겠지만, 그렇다할지라도 민주당과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한이 있더라도 티파티들이 원하는대로는 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됐으니 자동주차장치를 의무화하라.

링크: 운전면허 실기 시험 간소화

나도 운전면허실기 볼 때 대형학원에서 핸들 손잡이가 와이퍼에 닿을 때까지만 돌려라, 등 무턱대고 암기를 통해서 합격하기는 했다만 이건 너무 한 거 아닌가? 암기일지라도, 트럭일지라도 실제로 합격하기 위해 연습하면서 감각이 길러지는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S자는 그렇다치고 T자는 주차할 때의 기본인데 이렇게 면허 딴 초보운전자들이 온 나라의 주차된 차들을 긁을 기세다. 주행시험에서 평행주차는 테스트한다던데 주행대비 코스는 실기대비 코스보다 학원 수강료가 더 비싸다. 그리고 기계로 채점하는 것보다 사람이 보는 주행시험이 더 잘 될까? -_-;; 덴트, 도장 업체들의 일감을 늘려서 경기활성화하자는 것도 아니고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안그래도 기존 면허시험이 너무 유명무실화되고 있어서 온나라가 김여사 증후군을 앓고 있는 지경인데, 운전면허를 주행 중심으로 강화해도 모자를 판에 간소화한다니 거꾸로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차라리 이럴 거면 주차시험을 면제해주는 새로운 면허를 만들고, 다음과 같은 자동주차장치를 달린 차만 운전할 수 있게 하는 편이 낫겠다.

Auto Parking System Avante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