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빚쟁이

정형돈의 “강북멋쟁이”를 개사해 봤습니다.

미국은 버냉키 헬기가 있고
일본은 아베의 윤전기 있고
유럽은 올란드 세금이 있고
한국은 과천의 빚쟁이 있지

막 쓰고 건설해도 회계엔 없고
막 꿔줘도 이율은 낮추면 되고
막 부어도 환율은 꿈쩍도 않는
쓸데없이 과대지출 과천 빚쟁이

공사에 막 넘기고 회계를 빼고
별 거 없이도 빚이 는다 국채 없이도~
정권에 퍼줄거냐 쫀심이 있지
5년만 버티면돼 니네는 쫀심도 없냐~

라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 랄라라 라랄라랄라
라라라라
라라라라~

(과천빚쟁이)

(과천빚쟁이)

(NA)

다 다른 빚으로 사는 거지
다 똑같은 기준에 다 똑같은 회계법
자기 색깔을 가져
우리 과천 빚쟁이처럼

돈 없는걸 어쩌란 말인가 (빚쟁이~)
돈 없는걸 어쩌란 말인가

맨날 느는 빚 어쩌란 말인가 (빚쟁이~)
맨날 느는 빚 어쩌란 말인가

자꾸 지르는 걸 어쩌란 말인가 (빚쟁이~)
자꾸 지르는 걸 어쩌란 말인가

증세는 싫다는 걸 어쩌란 말인가 (빚쟁이~)
증세는 싫다는 걸 어쩌란 말인가

(과천빚쟁이~)

(과천빚쟁이~)

(과천빚쟁이~)

강준만이 쓴 “안철수의 힘” 독후감.

이 책은 두 권으로 나와야 했다. 머릿말과 맺는말은 빼고 본문이 모두 15장인데 이중 초반 8장은 안철수 비판론자들에 대한 답변이고, 나머지 7장은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들에 대한 비판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초반 8장은 안철수가 쓴 “안철수의 생각”의 별책부록으로 붙었어야 했고 후반 7장은 민주통합당 비판서로서 따로 나와야 하지 않았나 싶다.

강준만 교수(이하 직함 생략)의 고민이 이 상이한 두 부분을 한 권으로 묶은 데서 잘 드러난다. “안철수의 힘”이 제목인데 이는 “민주통합당 경선후보들에 대해 상대적인, 그리고 비판들을 이겨내는 안철수의 힘”로 풀어쓸 수 있다. 안철수 자신이 아니라 그의 힘이다. 정확히 말하면 안철수의 지지율, 즉 안철수 현상에 대한 분석인데 문제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지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거기서 민주통합당과 그 경선후보들에 대한 비판이 시작된다. 안철수가 지지 못할 정도로 흠결있는, 비판받는대로의 인물이 아니다. 현재의 높은 지지율에 타격을 줄만한 공격이 아니라고 말하고나서 그 경쟁자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 구조는 결국 강준만이 안철수를 지지하는 이유가 소거법임을 뜻한다.

초반 8장은 안철수가 아닌, 안철수에 대한 비판자들에 대한 글이다. 소거법이라면 일단 민주통합당 예비후보들의 결격사유를 거론하여 탈락시킨 다음에, 안철수에 대한 비판에 대응하는 순서로 쓰는 편이 논리적이다. 하지만 강준만은 일단 안철수에 대한 비판을 방어하는 글들을 먼저 배치해서 안철수에 대한 책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덕분에 첫 페이지부터 대량의 안철수 비판론들을 접해야 해서 읽기가 매우 힘들어졌다. 머릿말에서 안철수 현상에 대한 관심이 있을 뿐이며 그를 하나의 도구로서 이용하고자 한다는 강준만의 멘트가 없었다면 거대한 답문집 정도로 여길 수 밖에 없는 구성이다.  이는 책의 주제를 독자들의 시선을 안철수로 집중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또한 사실상 결과론에 가까운 지지이유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강준만을 본받아 우선 내 입장을 밝히자면, 나는 안철수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가 유일하게 이론적으로나마 인정한 비판(42페이지)인 정당정치를 중시하는 최장집류의 입장이며 이에 더해 대규모 기부로 민심과 관심을 사는 금권정치적 행태 때문에 대선후보로서 부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강준만은 이에 대해 현실적으로 현재 한국에서 정당정치가 제대로 기능하기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인가 하고 묻는다. 그리고 그 정당정치가 되돌리기 힘들 정도로 어그러진 치명적 순간으로 열린우리당 분당을 꼽는다. 이는 그의 말이 옳다. 후반부의 민주통합당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생각하면 더욱 암울한 상황이다. 정당에서 훈련과 경험을 쌓아 정치적 능력과 지지를 키워나가는 코스는 밟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다른 민통당 경선 후보들에게도 동일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나마 손학규, 김두관은 지자체장을 맡아 경험이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중에서 왜 안철수인가?

지지율 때문이라는 강준만의 입장은 확고하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정치판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가진 이가 지지를 받고 있는데, 이를 기존 정치판의 문법으로 해석해서도 곤란하고 틀리다는 이유로 매도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고 말한다. 불통에 대해서는 박근혜까지 끌어들인다. 어느 정도는, 아니 매우 결과론적인 입장이다. 지지 즉 힘이 있으니 시대의 의지라고 한다. 디지털 문명을 거론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체화로서 안철수의 지난 행적과 발언들을 이야기하지만, 핵심을 정리하자면 바로 지지율 뿐이다. 여기서 강준만은 이미 현실 정치가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신의 견해를 강하게 드러낸다. 어차피 기존 정치인들이 불신받고 능력도 없다면 어째서 현재 지지받는 아이콘을 부정할 필요가 있는가, 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겠는가? 어차피 민주통합당과의 연립정권이며 최악의 경우라도 관료들이 받쳐줄 것이다. 이러면서 강준만은 자신의 희망을 다음과 같은 말로 압축한다. “나는 우리 국민을 믿는다.” 물론 나 또한 안철수에 대한 대부분의 비판들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최장집류가 아니라면 피로증후군 관련 비판 정도만 경청할 가치가 있고 나머지는 들을 가치가 없지만, 그에 대항하는 근거가 지지율이 높고 말하는 이상이 높다는 이유만이어서는 안 된다.

이 결과론적인 근거가 통하려면 기존 정치판에, 정확히 말하자면 민주통합당에,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친노에게  더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바로 후반 7장의 시작이다. 가장 최근의 민주통합당 4.11 총선 패배로부터 그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나꼼수, SNS에 대한 분석이 이어진다. 이 내용들은 틀린 것이 없다. 논할 것도 없다. 그냥 읽으시면 된다. 이념이라 부를 수 없는 진영논리에 갖혀 있는, 행동하는 친노 강경파들에 의해서 어떻게 민주당 내부와 그 지지층이 망가졌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잘 분석한 글은 찾기 힘들다. 또한 멘토는 멘티들이 소비하는 아바타일 뿐이라는 SNS에 대한 비판 또한 탁견이다. 나는 수도권 빈민층의 분리, 폐쇄화가 이 현상들의 원인이라고 보지만, 이 주제는 나중에 다른 글로 다루려 한다. 어쨌든 민주통합당이 직면한 중도지지층의 이탈 – 이는 박근혜도 마찬가지로서 이들은 많은 경우 안철수를 지지한다. – 이 최대의 문제이며 그 원인이 친노의 과격화에 있다는 분석은 옳다. 과격파들의 지원을 받은 이해찬이 당대표경선에서 승리하면서 민주통합당은 20%대 지지율을 넘어설 동력을 상실했다.

강준만은 증오의 정치에 매우 큰 우려를 보인다. 특히 이명박과 MB라는 두 단어 사이의 간격을 내보이면서 극단적인 이명박 공격에 나서는 과격파를 걱정한다. 이들은 당내외에서의 활동력으로 민심을 왜곡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중도층까지 격렬하게 공격함으로서 중도지지층의 이탈에도 커다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을 포함해서, 중도층을 경멸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고 설득할 수 있는 비전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친노 과격파를 포함하여, 이러한 증오시대에 종언을 고하는 것이 시대정신이 될 것이라 말한다. 내 의견이지만 친노의 과격화는 대부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에 책임이 있다. 해결하기가 매우 난망한,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강준만이건만 그는 이 지점까지는 적지 않고 민주통합당 바깥에서 안철수를 지지하는 것으로 그 증오시대를 끝내고자 한다.

이러한 강경파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문재인이다. 이 책에서 영남 후보론에 대한 비판 바로 다음에 문재인이 나오는데, 당연한 순서다. 결국 노무현 어게인을 외치는 이들을 비판하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역주의 완화정책이 헛다리 짚었다는 것을 지적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중앙 집중과 이로 인한 한국 지역들의 부족화인데 정치적 구조조정만을 통해서는 이의 해결이 불가능하다. 또 하나는 친노 강경파들에 대한 호남의 인식 변화다. 특히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던 전북에서조차 친노에 대한 반감이 높다는 것은 강준만도 지적했지만, 같은 지역 출신인 나 또한 잘 느끼고 있는 일이다. 문재인 개인에 대한 비판도 상당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나꼼수, 미권스 등의 친노 강경파인 이상 호남에서 지지를 얻기란 힘들다. 일단은 여론주도층에서만 흐르는 이 기류가 여론조사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흐름이 언젠가 확산될 것은 확실하다. 괜히 호남에서 투표율이 곤두박질치고 박근혜 지지율이 생각보다 높게 나오는게 아니다. 더 나아가 강준만은 호남인들에게 중앙에서의 집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지말고 체제변혁에 나서야 한다는 호소까지 한다. 온라인 극우파들이 호남을 모멸하는 발언을 잇는 것도 호남이 중앙권력에 참여보려고 저자세를 보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곁들인다. 그렇다. 호남이 지지하는 (그러나 배신당했던) 영남후보론의 폐기다. 호남과 중도층의 지지를 모두 잃으면서 어떻게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가?

손학규에 대해서는 매우 높이 평가한다. 다만 그는 친노 과격파의 지지를 받기 어려워서, 현 민주통합당 내부 경선 통과가 불확실하다고 본다. 강준만의 분석이 옳다. 손학규는 정동영만큼 성큼성큼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더 충실하게 준비를 해 왔는데, 영남후보론과 친노 강경파 때문에 당내에서조차 주목받기가 힘든 처지다. 분당 보선에서도 승리했고, 본선 경쟁력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고 나는 보지만, 당내 경선이 먼저다. 김두관은 룰라론에서 높게 평가되지만 무소속이었던데다가 LH공사를 둘러싼 전북과 경남의 충돌에서 (경남지사로서 당연한 일이었지만) 경남에게 완벽한 승리를 안겨줘서 대선후보로서는 힘들지 않은가라고 보았다. 딱히 뭐라 평가할 여지는 없다. 그리고 간략히 지난 대선의 BBK를 답습해 박근혜에 대한 네거티브에만 매달리려는 민주통합당에 대한 비판으로 후반을 마무리한다.

어째서 결과론에 가까운 높은 지지율의 후보를 지지하는가. 강준만은 맺음말에서 그 이유를 밝힌다. 비상한 상황, 민중의 불만이 임계점을 넘어 언제 홍수처럼 세상을 쓸어버릴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대중의 기대와 지지를 받고 있는 지도자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07년에 나서지 않았던 이유로도 읽힌다. 현 대한민국의 정치가 그 기능을 상실했으며 강준만은 실제 혁명이란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를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한민국 체제 변혁이 시급하며, 이를 이끌 수 있는 지도자에게 필요한 힘을 안철수는 가지고 있다. 그를 이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신뢰를 가지고 국민을 믿자는 말로 나에게는 읽혔다. 그리고 그는 “우리 모두의 것”이라며 강준만은 책을 끝낸다.

나에게 가장 걸렸던 점은, 그러한 변혁의 기대를 한 인물에게 인격화personalization시켜야 하나? 라는 점이다. 그는 어떠한 조직도 체계도 갖추지 못한 한 개인일 뿐이다. 이게 노무현 때문,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라는 비판과 증오도 이러한 인격화의 한 단면이다. 이러한 증오를 이겨내자면서 중도적 성향을 보인다는 이유로 다시 한번 한 개인에게 집중하자는 것은, 강준만이 지적한 노무현의 지역주의 해결책처럼 구조적인 실패를 반복할 것이다. 강준만도 인정하듯이 안철수는 예외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인격화 문제의 예외는 아니다.

안철수의 힘을 도구로서 이용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본다. 안철수를 믿고 그의 힘을 빌려쓰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한 개인에게 정치적인 힘을 집중시키는 것은 이나마 이뤄놓은 절차적 민주주의 시스템을 다시 해체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침묵이 높이 평가되고 단지 이미지로만 인기를 얻는 이 인격화가 극단으로 가면 결국 파시즘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새 시대의 총아이자 공동체가 체화된 인물에게 모든 권력을 몰아주는 것이 파시즘이고, 이러한 한 개인에게 너무 큰 의미와 기대를 거는 것이 파시즘의 시작이었다. 안철수 개인의 호불호는 제쳐두고 인격화 자체가 우려스럽다.

강준만이 이러한 내 걱정들을 몰랐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승리하기 위한 길을 택해야 한다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더이상 망가지기 전에, 홍수가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 전에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것이 아무리 위험한 것일지라도 택해야 한다는 점에서 강준만의 의지를 보았다. 그는 강하고 결연한 메시지를 전한다. 나는 아마도 대선 투표일 바로 전날까지도, 어쩌면 당일까지도 이 책을 옆에 두고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나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그 전에 민주통합당 후보경선에 참여하여 손학규에게 한 표를 던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학생폭력대처에 대한 단상.

학생폭력범죄는 성범죄와 유사하다. 피해자의 고발, 증언을 얻는 것이 쉽지 않으며, 또래들의 집단 내에서 일어나기에 객관적인 증거, 증인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피해자가 유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그러하다. “저 여자가 원래 문란하다.”와 “쟤는 맞을만해요.”가 얼마나 다른가? 거기에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후진적 인식 또한 성범죄 – 특히 성희롱 -의 그 것과 매우 비슷하다. 한국은 성범죄율이 상당히 높은 국가이지만 성범죄에 대한 인식과 처벌이 향상되어 가면서 그나마 좀 줄어가는 추세다. 그렇다면 성범죄에 대한 대처방법 또한 학생폭력 범죄를 다루는데 있어서 큰 참고가 될 것이다.

폭넓고 강제적인 폭력방지교육이 필요하다. 한국 법률은 일정 수준 이상의 고용주는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참고) 강간, 추행 등의 강력범죄는 물론 대부분 사람들이 범죄로 인식하지만 성희롱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까지 처벌받는지에 대한 인식이 없었기에 교육이 필요했다. 이는 가해자가 스스로 자제하도록 하는 효과 이상으로, 피해자가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지식과 논리를 배우는 효과가 더 크다. 이게 참고 넘어갈 일이 아니고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이상 참지 않게 된다.

전문대책인력이 필요하다. 성범죄의 경우에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 여성 경찰관이 대화하도록 되어 있고, 수사-재판 과정에서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들이 마련되어 있다. (사실 언제나 잘 작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폭력범죄의 경우, 교사는 이미 감독의무를 방기했었기에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고려해 은폐하려는 경우가 많다. 특히 담임교사는 1년만 문제없이 진급시키면 책임에서 벗어나므로 이러한 인센티브 구조하에서 교사들이 은폐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한 폭력 피해자에 대한 카운셀링 능력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심리치료에 능숙하고 폭력예방/저지에 인센티브를 받는 전문인력이 확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증거, 증인에 대한 요구는 너그러워져야 한다. 성범죄의 경우, 꽃뱀이라는 새로운 범죄(정확히는 공갈, 무고죄로 해석될 것이다)가 등장할 정도로 증거에 대한 입증도가 낮아져 있다. 학생폭력에 대해서도 집단 폭행, 장기간 협박 등의 한정된 사례에 한해서라도 처벌의 폭을 넓히고 입증도를 완화시켜야 한다. 특히 문자, 통화내역 등 휴대전화와 메신저 등의 인터넷을 이용한 협박, 공갈 등에 대해서 폭넓게 증거로 인정해주어야 할 것이다.

엄격한 처벌이 필수다. 성인범죄에 대한 처벌 중 하나인 접근금지명령에 더해서 가해학생들만을 따로 모으는 특수학교제도도 가능하다. 폭력가해자라는 언급을 학생기록부에 남기도록 강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미성년자는 충동절제능력이 떨어지고 교화의 가능성이 큰 만큼 성인의 폭력범죄에 준하는 처벌을 가할 수는 없지만 형사처벌이 아닌 진학, 생활상의 불이익은 필요해 보인다. 또한 무엇보다도 교사, 교장 등 학교에 대한 불이익도 강화해야 한다. 성희롱도 고용주가 가해자에게 징계를 가하지 않을 경우에는 과태료를 부과한다. 형사처벌은 힘들다 할지라도 교사의 경우에는 진급과 급여에서, 학교법인에는 경제적, 명예적 불이익을 주는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특히 교화가 불가능한 환경이 많아지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서 특수학교제도는 다시 한번 깊게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왕따라는 단어 자체가 폭력성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국가와 사회는 최근 10년간 성평등과 성범죄 감소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이는 기본적 인권향상과 더불어 여성의 경제활동을 통한 새로운 노동력의 확보라는 실질적인 이유가 컸다. 그럼 학생폭력은? 이번 대구폭력자살사건에서 보이듯이 어린 학생 피해자들은 의욕을 잃고 성장과 학습에 지대한 피해를 입는다. 안그래도 부족한 어린이들을 망쳐서야 한국의 미래는 없다. 기본적 인권을 더해서, 이러한 (예비)피해자들을 건강하게 자라도록 보호하는 일은 실리적인 이유에 있어서도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 되었다.

– 근 3달만의 포스팅이 이런 암울한 내용이어서 매우 슬프다.

– 희생당한 모든 학생들의 명복을 빈다.

부산까지만 국제급 대도시인가?

링크: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세계대회라 하기엔… 운영 ‘실격’ – 한국일보

대구광역시는 한국 인구수 제4위의 대도시다. 인천이 수도권 – 서울의 항구이므로 도시권역을 고려하면 사실상 3위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러한 도시가 전력으로 준비했다는 국제 스포츠 행사가 상당한 불평을 사고 있다는 기사다. 인천이 2014년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심각한 재정악화로 문제가 되고 있는 사정까지 생각하면, 대한민국에서는 국가의 항구인 부산까지만 국제 행사를 치를 수 있는 대도시인가 싶어서 씁쓸하다. 영암F1이 무리한 지방의 행사유치로 지탄받고 있지만, 대구 정도의 대도시도 국제 스포츠 행사 잘 치르는 건 아니지 않는가? 어느 쪽이 낫다 잘한다 하기 이전에 다들 무리한 유치를 했으며, 그 근본원인은 한국의 수도권 집중현상에 따른 지방의 몰락에 있다는 경종을 울리는 이번 육상선수권대회다.

– 자 그럼 평창 동계 올림픽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곽노현 교육감, 후보단일화를 죽이다.

후보단일화 과정에 매수, 야합이라는 딱지는 피하기 힘들어졌다. 곽노현 교육감이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원을 건넸다는 점은 사실로 보인다. 그 의도야 어떻든간에 사퇴한 측에 단일화로 당선된 측이 금전을 지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수로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만약 이런 상황이 보수 후보들에게서 발생했다면 진보측에서 어떤 비난을 퍼부었을지 생각해보면 매우 간단한 일이다. 이미 검찰은 후보매수사건으로 만드려는 의지를 보였다. 곽 교육감이 일치감치 시인한 덕분에 언론에서도 대서특필하고 있다. 민주당이 빠르게 곽 교육감의 사퇴를 촉구하는 배경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더 곤란하게도 곽 교육감 개인이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하더라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 나는 정치인이 아닌, 교육계 인사들이 고도의 정치행위인 후보 단일화를 하면서 정치인들의 방식대로 선거자금 보전을 약속했지만 그 후처리에는 무관심, 무지했던 것이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고 본다. 정당 공천이 아닌 교육감 선거의 후보단일화는 당내 경선이나 조정이 없고 일단 후보 등록을 한 다음에 어떠한 제한이 없어진 선거기간 중에만 가능하다. 이 점이 정당 제도의 틀과 정치질서 내에서 돌아가는 다른 선거보다 교육감 선거가 후보단일화에서 문제를 일으킨 진짜 원인이지 않을까. 하지만 면죄부를 줄 수도 없다. 후보단일화에 내재하는 불씨일지라도 불장난을 했으면 잘 끄고 정리할 책임은 후보 자신이 가장 크다. 결국 후보단일화는 곽노현, 곽노현은 후보매수, 라는 매우 강력한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당장 서울시장 보궐선거만 하더라도 후보단일화가 매우 무력해졌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기대감을 통한 지지율 재고와 압력 형성인데 가능성이 매우 줄어버린 탓이다. 오해?를 피하려면 예비 후보 등록 전에, 비용을 지출하기 전에 단일화해야 하는데 사실상 선거운동으로 세 대결을 한 이후에 후보단일화를 해 왔던 전례에 비추어보면 매우 힘든 일이다. 다른 선거구와 같이 한다면 이런 저런 자리 나눠먹기로 하겠다며 설득할 수나 있겠지만 이번에는 서울시장선거만 치르는 보선이다. 이를 막으려면 범야권 복수정당이 참가하는 대규모 경선을 치르는 수 밖에 없어보이지만 선거는 2달도 안 남았다. 가능한가? 안그래도 일정이 촉박한 후보단일화가 더욱 큰 암초를 만났다. 후단이 안 되면 강남3구가 그 거대한 인구의 힘을 각인시켜줄 거다. 후보단일화 이외에는 방법이 없지만, 후보단일화 브랜드 가치는 땅에 떨어졌다.

이 와중에 민주당은 계파별로 서울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분위기고, 민노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도 각각 득표력있는 스타들이 존재하는 정당들이다. 이들이 후보등록 전에 득표력있는 단일화를 성취하고 단일대오를 갖춘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선거일 며칠 전에 이뤄지기도 굉장히 힘들 일을 이번에는 선거운동 개시전에 마쳐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나라당 선거진영에서는 아마도 상대 후보들의 이름보다 곽노현 세 글자가 더 많이 울려퍼질 것이다. 초 비상사태다. 각오나 되셨나들 모르겠다.

곽 교육감은 앞으로 후보단일화가 논의될 때마다 아이콘으로 떠오를 것이다. 돈거래 없는, 깨끗한 후보단일화라고 말해봤자 상대 후보가 “곽노현!! 곽노현이 돈 준 것을 기억하세요!!!”라고 대응하면 끝이다. 후보단일화는 총선, 대선에서도 계속 매수로 매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선거를 아마추어로서 치르고 뒷마무리가 허술했던 덕분에, 아마도 앞으로 몇년간 곽노현 교육감은 선거판의 단골 구호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사퇴해봤자 모든 잘못을 인정하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서울시장 보선은 포기할지라도, 곽노현 후보단일화로 매수, 라는 이 강력한 프레임을 총선, 대선에서는 어떻게 깰 지가 문제다. 후보단일화 자체는 포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절차로 문제없이 설득력있게 진행할 것인가, 그 것이 지금의 곽노현 교육감 사태가 주는 쓰디쓴 과제로 보인다.

비전문 정치인들인 교육계 인사들이 총선보다 더 큰 규모의 선거를 치르게 만드는 교육감 선거제도 또한 검토대상이다. 교육감 선거 페지 의견도 보이지만 직선제를 포기하기에는 교육청에 대한 민주적 통제 수단으로서 너무 아깝다. 공정택 전 교육감의 비리 등은 교육감 선거가 아니었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일이다. 교육계는 그 성질상 공직자로서 정년이 보장되는 이들의 폐쇄적 조직이기가 쉽고, 그 결과 감사 등 내부통제는 무력하기 그지없다. 우리들이 자라면서 학교에서 비리를 보지 않은 적이 얼마나 있나. 가장 좋은 방법은 학교 운영에 외부인사들이 이사로 참여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힘들다면 교육감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고 선거에서 평가받게 하는 것이 차선이다. 물론 매끄럽게 선거가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은 꼭 필요하다.

사학법이 개정된다면 굳이 교육감을 직선해야 할 필요는 매우 줄겠지만서도.

Rejector for perfection, Steve Jobs의 CEO사임.

0%가 됐건 99%가 됐건, 고객입장에서는 어차피 안 되는 것에 불과하다. 100%가 아니면 쓸모가 없다. 스티브 잡스 개인은 엔지니어로서도 디자이너로서도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았으나, 어디까지 해야 고객이 만족할 수 있을지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타협은 최대한 거부했다. 이를 위해서는 그 밑에 유능한 인물들을 모아 그들을 닥달하는 것으로도 유명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위대한 CEO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방향성과 비타협성. 하지만 빌 게이츠는 기술적 선견지명과 능수능란한 타협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를 일궈냈다. 잡스만이 정답인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기업을 이끌면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잡스도 게이츠도 많은 실패를 통해서 그러한 안목을 길러 나갔다.

스티브 잡스가 건강상 이유로 CEO직을 사임했다. 쾌차하여 그가 생각하는 미래를 계속 보여주길 바란다.

– 그런면에서 삼성 이회장님도 반도체, 디자인 투자 등에서는 다수의 히트작을 보유중이시다. 닥달하시는 능력도 탁월하시고, 삼성전자가 일본 업체들을 따돌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주민투표법 상 투표율 제한에 대한 단상.

1/3이상의 투표율을 요구하는 주민투표법의 규정은 통일된 의견으로 움직이는 소수가 민주주의 시스템을 파괴하지 않도록 하기위한 방어막이기도 하다. 서울 시민을 1000만명이라고 치자. 만약 이러한 제한이 없고 투표율이 20%라면 총 투표수는 200만표. 이러한 상황에서는 100만표, 즉 서울시민의 10%만 움직일 수 있으면 주민의 의사로서 제시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특정 사안에 대해 직접적인 판단을 내리는 주민투표의 경우에는 소수의 전횡을 막기 위한 제한이 필요하다.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의 경우, 이러한 문제점을 방지하기 위해서 단독출마일 경우에는 유효득표수를 규정하고 있으며 대표자들 또한 권력 분립을 통해서 상호 견제 하도록 되어 있다. 주권자인 국민, 또는 주민이 최종의사를 표시하는 투표는 그러한 제한이 존재하지 않는다.

1/3 수치가 적고많음을 논할수는 있겠지만 이러한 투표율 요구 제한 자체는 주민투표라는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하는데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권력 분립, 상호 견제라는 대의제의 장점을 bypass하기 위한, 독재의 도구로서 이용되기 쉬운 직접투표의 위험성은 나치스 집권과정이 잘 보여주고 있다. 히틀러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헌법을 뛰어넘기 위해서 국민투표와 폭력을 이용해 의회의 견제를 뿌리치곤 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독일 연방공화국을 비롯한 대륙법계의 국가들은 기본권 개념을 크게 발달시키고, 얼핏 보면 시민의 참정권을 상당히 제한하는 듯한 장치들을 많이 도입했는데, 이는 나치스 집권 즉 바이마르 공화국 멸망 과정에서 얻은 교훈들이 반영된 것이다.

즉 투표율 제한이 서울 시민 개개인의 투표권과 참정권을 제한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는 그러기에 충분한 경험과 목적을 가지고 도입된 제도다. 또한 투표를 하지 않을 권리 또한 헌법적으로 보호된다. 그게 주민투표처럼 또 하나의 정치적 의사표시가 된다면 더더욱 그렇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의 진퇴를 걸고 국민투표하고 싶다고 말한 것만으로도 헌재는 위헌이라고 결정했는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자신의 진퇴를 주민투표에 건 것은 불법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해 봤자 투표율 자체가 안 나올 것 같은 오늘 상황은 오히려 안습이 되어버렸지만, 진퇴를 건 것은 확실하게 심판받아야 하지 않을까.

민주적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표자가 직접 투표에 진퇴를 걸어서는 안 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그가 선거에서 이긴 다수의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즉, 그는 과거에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자다. 그가 특정사안에 대해서 자신의 진퇴를 건다면 지지자들은 (그 사안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뽑은 대표자가 그만두ᅟ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은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특정사안에 대한 판단에 대해서 대표 개인에의 지지를 끼어들게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짓을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던 대표자가 한다는 점에서 직접 투표에 진퇴여부를 연관시키는 점은 금지되어야 하고 헌재 또한 위헌이라 판단했다.

정리하자면 이 글의 결론은, 오늘 주민투표를 안 한다고 해서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점과 자신의 투표권을 침해당했다고 분노할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미 연방정부 디폴트: 후폭풍 #2/2

미 연방정부가 디폴트에 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실 미 연방정부가 망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다. 이 디폴트는 부채 상환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그거야 달러를 찍으면 된다.) 정치적 대립에 의한 것이므로 미 연방정부의 파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정해진 일시에 상환되지 않는 일이 생겼으므로 미 국채의 신용도는 떨어질 수 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그를 능가하여 새로운 기준이 될 채권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미 국채의 신용도 하락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미 국채는 대표적인 부의 저장형태였다. 예를 들어서, 한국 정부는 외환보유고의 많은 부분을 미 국채로 보유 중이다. 달러화표시 한국 국채의 신용도 중 많은 부분이 그 미 국채 보유액에 의존하는데, 미 국채의 신용도가 하락하면 한국 국채의 신용도도 하락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연쇄적으로 신용도 하락을 불러온다. 그 결과 자본조달 비용(즉 이자율)이 증가한다. 비유하자면 안 그래도 신용불안이 존재하는 현 경제상황에 가장 큰 버팀목 중 하나가 주저앉는 셈이다. 보유자산의 감소로 인해 부채 비율의 증가는 피할 수 없고, 이는 다시 채권 회수를 불러오고 이는 유동성 악화로 이어진다. 더욱 안 좋은 것은, 이런 연쇄가 순환하는 경우다. 이럴 경우에는 어떠한 일이 벌어질 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또한 미 연방정부는 그 지출을 대폭 삭감할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연방정부의 보조에 의존하는 주 정부들의 부채문제가 더 커진다. 이미 연방정부의 보조 및 지원을 감안하고도 몇몇 주 정부, 지자체의 부채문제는 미 언론에서도 우려할 정도였는데 만약 연방정부가 그들에게 어떠한 지원도 못해주는 상황이 온다면? 연방정부 지출로 보증되었던 미 지방채가 그 보증을 잃어버리면 당장 정크 본드가 안 될 수 있을까?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공공 채권은 많은 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 문단에서 언급한 신용도 하락 – 유동성 악화의 악순환이 미국 내에서 대규모로 발생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미 연방정부 지출에 의해 돌아갔던 경제 분야나 소비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도 없겠다.

그리고 2008년에 그 악순환을 물을 타서라도 막아냈던 버냉키 FRB 의장의 양적 완화도 거의 불가능하다. 연방정부의 부채가 늘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양적 완화를 하려면 정말로 달러를 그냥 찍는 수 밖에 없는데, 이는 미 경제의 종말을 의미한다. 금 본위제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티파티가 정치적으로 이를 용납할 리도 없겠다. 결국 어떠한 제동, 완화 장치도 없이 악순환들이 언제 끝날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미 연방정부 디폴트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사는 순간부터, 사실 미 제국은 그 황혼기에 들어섰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디폴트 맞은 정부가 세계를 제패하는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분명히 채권류의 가격은 폭락하고, 달러 현찰의 가치는 폭등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것은 전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던 금융시스템 붕괴의 시작을 뜻한다. 사람들이 현찰을 손에 쥐어야 안심하는 세상은 금융이 죽은 세상이다. 이 폭풍이 어떻게 진행될 지, 전쟁으로 발전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미 연방정부 디폴트: 이념전쟁 #1/2

  1. 링크: 오바마-베이너 협상 결렬, 美 ‘디폴트’ 위협 현실화? – 프레시안
  2. 링크: 美초선의원 “오바마 디폴트 위기 ‘거짓말'” 주장 – 연합뉴스
  3. 링크: 사공 많은 美공화당 “도대체 누가 대표냐” – 연합뉴스

미 연방정부 부채한도 상향을 위한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뉴스다. 미 연방정부의 부채는 미 의회가 정해놓은 최대 한도를 넘을 수 없게 되어 있다. 부채가 그에 달할 정도로 증가해서, 그 한도를 상향시키기 위한 민주당+행정부(대통령)과 공화당간의 협상인 것이다. 만약 부채 한도가 늘어나지 않으면 미 정부는 돌려막기가 불가능해지면서 채무 불이행, 즉 디폴트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얼핏 보면 부채 한도 증가와 정부 지출 축소는 합의에 별반 문제가 없고, 증세에 관련해서만 이견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디폴트가 거론되는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티파티(Tea Party)다. 리버테리언(libertarian) 모임인 이들은 정부지출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고 믿는다. 국방과 치안, 즉 공안만이 정부가 할 일이다. 그들의 생각은 링크 2번의 초선의원의 말에 잘 드러나있다. 세수입이 국채 이자를 지불하는데 충분한데 왜 부채를 더 늘려야 하나? 정부가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이념이다. 미 연방정부가 디폴트를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은 그들에게는 굉장한 호재다. 누가 대통령이든간에 부채 한도와 감세만 틀어쥐면 정부는 많은 작업, 그들이 볼 때는 불필요한 개입을 줄일 수 밖에 없다. 티파티계 의원들은 증세금지에 대한 유권자 공약을 이유로 들지만, 지출축소에 더해 감세까지 지속함으로서 정부지출을 크게 줄이자는 게 핵심이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신이 추진하는 거의 모든 정책의 중지를 요구하는거나 다름없으니 디폴트가 나서 대통령 자리가 날아가더라도 포기할 수가 없다. 허수아비 대통령이 무슨 소용인가.

티파티들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미 하원에서 공화당이 승리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다음 대선에서도 캐스팅 보트를 쥘 가능성이 높다. 공화당 정치인이라면 그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맥케인 등 기존 보수주의자 입장에서는 연방정부가 디폴트에 처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티파티에게는 자신들의 이념을 항구화시킬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일 수도 있다. 그 결과가 링크 3번의 기사가 보여주는 공화당의 지리멸렬함이다. 그리고 이제는 기술적으로 대통령에게 긴급권한을 주고 그 다음 의회가 정식으로 한도를 올리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는데, 공화당이 하원에서 통과시킨 법안은 민주당이 우세한 상원에서 부결되었다. 하지만 공화당이 티파티의 의견을 억누르고 다른 타협책을 찾기란 어려워 보인다.

민주당과 티파티. 어느 쪽이든 지는 쪽이 자신의 정책이념을 완전히 버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공화당은 그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일단 기술적으로는 디폴트 불사를 외치는 티파티 쪽이 훨씬 유리한 상황이다. 디폴트가 나서 연방정부 지출이 완전정지되면 그들이 원하는 상황으로 이끌기 매우 쉬워질테니까. 수많은 부분에서 공공성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회복하려는 민주당 또한 전전 정부때부터의 정책방향을 간단히 포기할 수는 없다.

나는 결국 미 연방정부가 단기적일지라도 디폴트를 맞게 될 거라고 본다. 이 협상은 사실상 종교에 가까운 이념과 가치관의 전쟁이며, 쌍방 모두 치명적인 정체성을 놓고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말이 맞다. 이 디폴트가 오바마의 대통령직을 날려버리겠지만, 그렇다할지라도 민주당과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한이 있더라도 티파티들이 원하는대로는 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평창 동계 올림픽: 타이밍 안 좋은 급행료.

나는 전북 출신으로서, 무주를 배신한 평창이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건 말건 신경 안 쓰겠다는 입장이었다. 되지 말라고까지는 안 하겠지만 유치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 또한 나지는 않았다. 그건 1차, 2차 시도? 때의 일이고 이번 3차는 왠만하면 안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재정문제 때문에 그렇다. 이미 한국 정부는 4대강과 저축은행 처리에 각 20조 이상씩을 붓는 입장이다. 최대한 양보해서 4대강은 리먼 위기에 대응하는 토건부양책이었다고 이해해보자. 저축은행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부동산 버블붕괴에 대비하려면 앞으로 재정적 여력을 최대한 아껴야 할 판이다. 강원도 또한 재정사정이 매우 나쁘다. 거기에 2018년 개최년도는 별 문제가 없는데, 하필이면 2011년에 유치가 확정된 것은 최악의 타이밍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교통 인프라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 평창 동계 올림픽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인프라다. 인프라는 크게 보아 교통 인프라와 숙박 인프라, 그리고 경기 인프라로 나눌 수 있겠다. 내 의견은 명확하다. 교통 인프라를 철도에 중점을 둬서 집중적으로 건설하고, 숙박과 경기 관련 인프라는 최소로 줄여야 한다. 선수촌 숙소와 보도센터를 모두 가건물로 지었다는 릴레함메르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알펜시아 리조트 이상으로 투자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앞으로 10년 넘게 디레버리지와 인구감소 속에서 소비가 급감할 경제구조다. 그런데 레저 산업인 숙소나, 고비용 한철 장사인 동계 스포츠 경기장에 투자하자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언젠가 소비여력이 돌아오면, 교통 인프라를 기초로 해서 나머지는 쉽게 지을 수 있다. 그러니 강원도 발전을 위해서 나머지들은 치를 수 있는 수준으로만 하고, 교통 인프라를 충실하게 갖추는 데 주력해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적정한 인프라 건설로 치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나 자신부터가 비관적이다. 최악의 타이밍에 유치가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임기 1년반 남은 대통령은 토목사업으로 경기부양하는데 강한 의지를 갖고 있고, 내년에는 바로 총선과 대선이 닥친다. 총선은 말할 것도 없고, 51대49가 될 대선에서 누가 강원도민들의 표를 무시할 수 있겠는가. 강원도지사는 막 야당소속으로 바뀐 참이다. 건설업계는 4대강에 투입했던 비대한 장비와 인력들을 유지하기 위해 일거리가 필요하다. 어디를 보아도 국가 내에서 과도한 투자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없다. 제1야당인 민주당조차 경기장 건설비용의 국비지원비율을 30%에서 70%!로 특혜를 주는 특별법을 요청받는 자리에서 바로 약속하는 판이다. 차라리 4년전이었다면 4대강과의 동시에 진행하느라 제한이 불가피했다, 8년전이었다면 수도권 아파트 가격을 올릴 자본들을 상당부분 평창의 개발투자로 돌릴 수 있었다. 안그래도 경기부양에 약할 수밖에 없는 2011년에 유치가 확정되었으니 정부재정을 아랑곳하지 않은채 4대강을 능가하는 재정투입이 이뤄질 것은 뻔히 보이는 상황이 됐다.

인터넷에서 평창올림픽을 인프라 건설을 위한 급행료로 여기는 듯 하는 몇몇 의견을 볼 수 있었다. 낙후된 강원도민 입장에서는 이제좀 건설할 찬스가 왔는데 이리 초를 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미울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무주 또한 인프라 투자 받으려고 올림픽을 원하지 않았냐고 반론하실 점도 안다. 영암F1을 들먹이시는 분들도 봤다. 하지만 영암은 경기장 하나로 끝났지만 (러브호텔에 BBC 중계진이 묵었을 정도니…) 평창올림픽은 도로부터 뚫어야 할 판이다. 그리고 왜 영암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으려하지 않으시는지 의문이다. 티켓만 사면 되는 F1이 비싸서 안 되는데, 루지나 스케이트, 스키점프를 즐기시는 분들이 10년 후라도 경기장들이 대규모 적자를 면할 정도로 많아질까? 스키장은 지금 부족한가? 나는 영암도 바보짓이었다고 생각한다. 강원도 입장에서 가장 필요한 인프라는 교통 즉 철도와 도로 시스템이라고 보이는데, 경기장이나 숙박시설은 급행료에 불과한 것에 너무 집착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생각이다.

물론 평창 올림픽은 그 준비하기에 따라서 매우 성공적인 올림픽이 될 수 있다. 그를 위해서라도 평창 올림픽 준비에는 제도의 약점으로 인해 해결되지 않는 문제점들 – 견제자의 부재 – 이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어차피 미친듯이 투자하고 국가재정은 스페인 수준으로 악화되고 강원도는 파산 일보직전까지 몰릴 것이 눈에 뻔히 보여서, 글을 써 봤자 욕밖에 더 먹겠냐는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이런 민감한 시기에 폭탄이 떨어지는 것에 어떤 말도 안 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쓰라렸다.

P.S.1. 일본의 공공부채는 대부분이 비효율적인 인프라 건설에 낭비되었다.

P.S.2. 이제 이탈리아도 공공부채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EU가 우려하기 시작했다. 재정건전성은 쉽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 이명박 정부는 이제 F-35 스텔스 전투기만 구매확정하면 재정지출 그랜드슬램 달성하겠구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