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Q 1회차 감상후기

일단 네타바레가 난무하는 글입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이라면 포스터 밑으로는 읽지 말길 권해드립니다.

– 하나만 하자면, 아, 슬프다. 정품의 운명이여… 어쩌다 야바위꾼을 만나서.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은 破 중간부터 원작과 다른 길을 걸었고, Q에서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었다. 이는 철저히 디테일과 캐릭터들만을 수정하고, 서사는 그대로 뒀던 토미노 감독의 신역(新譯)제타와는 다른 선택이다. 제타는 역습의 샤아라는 정해진 미래가 있기도 해서 그렇지만, 에바는 리메이크가 아니라 에반게리온 리부트쪽에 더 가깝다. 무엇보다도 안노 히데아키가 세세하게 간섭하지 않았다는 게 여기저기서 드러나면서, 원작과의 거리로 따지자면 가히 더블제타 수준이다. 완성도는 훨씬 더 높지만…

그래도 破는 TV판의 틀 내에서 신지를 성장시키면서 TV판 너머의 서사로 나아갔다면, Q는 캐릭터들만 가져오고 깡그리 다 버렸다. Q가 Quickening에서 따온 제목이라던데, 확실히 서둘러 인물들을 새 배경에 배치해놓은 면에서는 납득이 간다. 다만 짧은 극장판인 관계로 인물심리묘사가 완전히 생략되면서 성우들조차도 연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안노는 자신이 생각하던 에바를 완전히 버렸음을 선언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제 극장판을 이끌어가는 이는 안노가 아니라, 새 세대들임을 확실히 했다. 안노였다면 후유츠키까지 연사로 끌어들이면서 세세히 설명해주는 대신에, 신지의 심리묘사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을 것이다. 신지와 에바, 카오루와의 교감표현에도 더 공을 들였을 터다. 하지만 Q는 그렇지 않다. 빠르게, 빠르게 그 다음 이야기와 정보들을 보여준다. 나는 이러한 프레스토 진행에서, 천원돌파 그랜라간을 보았다.

序, 破도 주관적 심리묘사에 치중하던 이전과는 다르게 철저히 객관적인 시점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Q는 더하다. 추상적 표현이라고 해 봤자 음표와 숫말 두 마리; 정도 뿐인데다 아예 캐릭터들은 진행에 꼭 필요한 대사들 외에는 입을 다문다. 카오루의 작업멘트조차도 그런 수준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이는 연출자의 관심이 신지의 고난-깨달음-구원으로 이어지는 주관적 서사에서 거대한 에바 월드의 묘사로 옮겨갔음을 보여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안노가 강력히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으면서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취할만한 방향으로 옮겨갔다. 극장판 등장에 맞춰 에바 해설서 같은 게 나오고, 새로운 공식 설정들이 나오면서 위험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확실해졌다. 에반게리온은 더 이상 안노의 이야기도, 신지 inside의 이야기도 아니다.

신지 혼자의 이야기가 아니려면 상대역과 그 둘을 둘러싼 세상이 필요하다. 여기서 마리의 필요성이 생긴다. ? 무슨 이야기냐고? TV판 이래, 신지의 관점에서 여성은 셋으로 나뉘었다. 생활감있는 친밀한 친족인 미사토, 가까이에 있으면서 상호영향을 주고 받는 또래의 아스카, 그리고 멀고 모르겠지만 신비하게 그리운 레이. 아스카가 중간에 등장하지 않고, 최종적으로는 신지의 상대역? 여왕님?이 되면서 세계 내에서 “일반 또래? 여성친구”를 맡아줄 캐릭터가 필요해진 것이다. 아니면 에바 월드는 신지의 누나, 애인, 엄마…만 가득한 하렘월드가 될 테니까. 신지와 적당한 거리와 긴장관계에 있는 썸녀, 그게 마리에게 맡겨진 역할. 물론, 마리 관련해서도 서사에 떡밥들이 많이 던져져 있지만 회수될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마리는 기본적으로 여주인공으로 승천한 아스카의 빈자리,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미사토의 그 것을 메꿔주기 위한 캐릭터에 가깝다.

아스카가 유일 여주인공이 되었다. 신극장판들만 보면, 파에서 신지와 레이가 결합?하면서 초호기가 각성했고, Q에서 카오루가 죽으면서 13호기가 각성했다. 거프(한님의 제보로 수정)의 문이 두 번 열렸다 닫힌 상황. 이제 남은 결합-각성의 신지 파트너 자리는 단 한 자리, 그리고 사도의 자리도 한 자리 뿐이다. 아스카밖에 남지 않았다. 미사토가 중년 파워를 보여줄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아니, 없지, 없어. 최종적으로 신지와 끌어안을, 리린과 합체?할 사도로서 아스카는 신지와 동등한 위치까지 올라섰다고 봐야 할 거다.

Q감상들을 보면서, Q에서 이루어진 두 개의 커다란 설정변경이 언급되지 않는 게 놀라웠다. 첫째는 후유츠키가 장기를 빙자하여 친절히 해설해주면서 배경에 깔리는 장면인데, 원래 이카리 유이는 실험중 사고로 초호기에 녹아버린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보면 의도적으로 초호기 코어에 직접 내려지는 성녀 이미지로 변경되었다. 즉, 초호기에 유이가 OS로 인스톨된 것은, 사고가 아니라 최소한 유이와 겐도 두 사람의 의도였다는 중대한 설정변경이 이뤄진 것이다. 둘째는 아스카의 외눈안대 속에서 불타는 파랑 눈동자. 파탕 아오!! 시토데스!! 의 의미를 아시는 분이시라면 이게 실상 아스카가 신지 애인 후보인 인간 소녀에서, 반인-반사도급의 인물이 되어버렸음을 모르기가 어려웠을텐데. 왜 그녀가 거의 극장판 하나에서 통채로 안 나와야 했는지 이것처럼 잘 알려주는 내용이 더 있을까.

특히 카오루가 지오프런트에 침입한 후에, 바뀐 카시우스의 창을 보면서 자기가 제1사도에서 제13사도로 떨어졌다는 말을 하는데, 그럼 새로 만들어진? 제1사도는 누구겠는가? 아니 그 이전에 이제 남아있는 메이저;;; 사도는 아스카 밖에 없다. 즉 파 진행 중, 그리고 파와 Q 사이에 겐도가 (뭐 작품 내내 언제나 하기는 하지만) 야바위질을 몇 개 했는데, 그중 가장 큰 야바위질이 바로 카오루를 아스카로 대체해버린 것. 카오루가 “제레의 아이”였으니까 제레의 계획은 초호기가 아닌 13호기를 새로 건조하여 아담의 아이인 사도 대표 카오루, 리리스의 아이, 즉 리린 대표 신지가 결합, 임팩트를 일으켜 새로운 진화의 길로 나아간다,였다. (본격 에반게이온 플랜) 그런데 일단 오고보니 핵심부품은 어딘가로 빼돌려놨고 정품 카오루는 일회용 봉인씰로 써버리고, 나중에 농도가 반인 호환품 아스카를 써먹겠다고 겐도가 씨익 웃고 있는 판이다. (내 아들을 게이로 만들 생각 없어!! 유이한테 혼나! )

또 하나는 지금까지 신지가 에바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초호기가 자기 엄마였기 때문인데, 제레는 13호기로 문을 열어제낄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니까, 리린 대표가 신지여야 할 이유는? 유이가 사고로 초호기에 녹아들었다는 설정을 유지하는 한 이는 설명이 어렵다. 하지만 유이가 의도적으로 녹았다는 신 설정에 따르면, 지금까지 유이 용융 현장에서 있던 신지는 기억을 지워버린 거였는데, 그게 아니라 실제적으로 신지 또한 그때 인간보다도 리리스에 가까운 존재로 바뀌었다는 게 설득력이 있다. 즉 리리스 또는 아담으로부터 무엇인가 영향을 받아버렸다,가 아닐까. (그럼 게이를 넘어 이종족간 사랑, 역시 하렘 마스터!)

신극장판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아니 그 훨씬 이전부터 가이낙스 스탭들 사이에서는 에바 월드에 대한 재구축이 일어났던 것 같다. 어쩌면 TV판에서는 신지의 심리를 보여주고, 신극장판에서는 그 심리에 따라 세계가 바뀌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 본다. 뭐, :ll에서 TV판으로 회귀하면서 지금까지의 모든 에바를 집대성할지, 아니면 마음이 외부세계로 실제로 바꿀 수 있다는, 새로운 주제의식을 관철시킬지 기다리는 즐거음으로 남겨두련다.

5 thoughts on “에바Q 1회차 감상후기

    1. 링크 감사합니다. 주신 링크의 글은 신극장판Q가 개봉된 이후에 TV판과 신극장판을 다시 해석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극장판의 장면도 들어가 있기도 하고요. TV판의 유이 대사는 워낙에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 어떻게든 해석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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