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근대화에 대한 단상.

– 예전에 써놓고 공개하지 않았던 글인데, 그 때는 더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괜찮겠다 싶어서 공개합니다.

조선-한국의 근대화 논의를 보면서, 나는 혜초 선사와 소중화(小中華)를 떠올린다. 우리나라 제헌사(헌법 제정 역사)를 보면 독일에서 법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줄줄이 나온다. 이승만이 (말그대로) 깽판을 쳐서 그렇지, 제헌 헌법 초안들은 후일 독일 기본법(독일헌법의 정식명칭)보다 나은 부분이 있을 정도로 매우 뛰어난 부분들이 많았다. 이는 일본이 패전후 메이지 헌법을 국민주권주의에 입각하도록 바꾸질 못해서 맥아더 휘하 극동사령부가 사실상 현행 일본 헌법을 작성했던 것과 크게 비교된다. 학문적 깊이야 일본에 비할 수준이 아니었겠지만, 최소한 조선인들은 현대적 헌법을 스스로 (독일 이론을 베껴오던 어쨌든 간에) 작성할 정도의 역량은 가지고 있었다. 신라의 혜초 선사는 천축에 가서 불법을 배웠고, 조선은 소중화를 외칠 정도로 유학을 번성시켰다. 그러한 전통 속에서 한국은 독일에서 직접 법학을 배워온 학자들이 독일이론에 입각해 헌법을 작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한국인들은 지주-자산가 계급일수록 유학 보내기에 열을 올렸는데, 유교적 전통이 파괴된 식민지 조선에서 그 대상은 일본을 통한 서양 문명이었다. 광복 후 이는 미국으로 강력히 집중된다. 구 일본제국은 한반도에 이런저런 인프라를 지었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관동군으로부터 인적, 정신적으로 승계된 군사국가주의문화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다. 박정희는 식민지 조선을 만주국 스타일의 공업군사국가로 개조해갔다. 그렇다 할지라도 한국은 광복부터 지금까지 小美國을 지향하는 국가로 존재하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거의 모든 인프라가 파괴되었어도 인재와 지식은 남아있었고, 능력이 되는 이들은 미국으로 수도 없이 유학을 떠나고 문물들을 들여왔다. 다녀오지 못하는 이들은 군수지원이든 기독교 선교사들이든 쓸 수 있는 연줄은 모두 동원해서 미국을 배우고 따라하는데 열중했다. 결국 한국의 현대사는 만주국을 지향하는 관동군 문화와 소미국을 지향하는 민간인 문화의 격렬한 충돌사라고 볼 수 있겠다.

2 thoughts on “한민족의 근대화에 대한 단상.

  1. 이건 조금 무리한 추측일지 모르겠지만…. 일제 시대에 일본을 거쳐 들어온 서구 문명은 미국보다는 유럽의 그것에 가까웠죠. 특히 일본은 군국주의적 경향이 강한 독일을 배우기를 선소했죠. 당대 법학도들이 독일 유학을 선택한 것도 그와 관련이 없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현재의 한국 법이나 제도도 원형은 유럽의 그것에 가깝지 않습니까. 관동군 문화라기보단, 일본의 영향을 받은 유럽 문화가 아닐까요.

    일단은 민간인 문화 혹은 미국 문화가 장기적으로는 우위로 보입니다. 해방 후엔 법학도들도 미국 유학을 선호했고, 미국식으로 법이 바뀌어 나갔으며, 노무현 때 로스쿨이 도입된 것이 화룡점정이었죠. 현 민통당의 사법개혁안은 검찰의 특수부를 분리해서 미 연방수사국을 모델로 한 ‘국가수사국’으로 만드는 것을 간판으로 내걸고 있고요.

    일단 법 쪽으로는 그렇기는 한데, 요즘 유행하는 복지담론 경제민주화 등은 또 유럽적이니…. 결국은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칠 수는 없는 것이겠죠.

    1. 관동군 문화는 딱히 유럽문화라고 하기 힘듭니다. 본문에선 서구문명이라 했지만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일본화된 유럽문명인데, 일본에서도 타이쇼 데모크라시도 있었고 넓은 스펙트럼이 존재했지요. 이게 군사국가로 치달아가면서 나치스 독일과 비슷한 모습을 띄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군이 국가를 통제하고, 국가가 전 경제를 통제하는 만주국 시스템과 그 문화를 유럽 문화라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 제도는 사실상 일본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어차피 그것들도 유럽에서 온 거라 서로 가까운 것은 당연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민주당 집권 이후에 미국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기도 하고요. 복지나 경제민주화 등 유럽대륙적인 담론들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이는 관동군 문화라기 보다는 이러한 미국화에 대한 반응으로서 대체품 수입?에 가깝지 않은가 싶습니다. 하지만 큰 흐름 자체는 미국화에 있다고 봅니다.

      YS의 하나회 청산 이후로 관동군 문화는 소멸해가고 있긴 합니다만, 재밌게도 재벌 내부에서 이러한 문화가 짙게 엿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경제민주화는 또 한번의 관동군 문화 청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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